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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Jul 04. 2022

주택살이 첫 장마


곤충들과의 만남도 내성이 생기는 것 같다. 밤마다 거실에 왕거미가 나타나는데 몇 번 계속 보다 보니 한두 번 보던 때보다는 확실히 덜 놀라게 된다. 곱등이를 처음 봤을 때도 깜짝 놀랐지만 몇 번 더 보다 보니 처음보다는 침착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곤충들에 대한 담력이 조금씩 길러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두려운 건 곤충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정말 두려운 순간은 정확히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들의 생명을 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살충제를 살포하거나 명을 다하게 만드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가장 싫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살충제를 뿌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행위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나도 어쩌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살충제를 써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공간에 그들이 재빠르게 침투하려거나 할 때는 별수 없이 살충 스프레이를 집어 들어야만 했다. 제일 미안하고 마음 아픈 순간이다. 나는 너희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너희를 위하여 꼼꼼히 더 집의 틈을 막으리라.


아기 사마귀, 남생이 무당벌레, 검은방패 무당벌레, 풍뎅이, 하늘소 등등 우리 집 주변에는 사람에게 이롭다는 익충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거미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진딧물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조용히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전원주택에서 장마를 처음 겪는다. 장마는 일단 나에게 당분간은 풀 뽑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정원관리 휴식기 같은 느낌이었다. 장마가 끝나면 급성장한 풀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당분간은 비 핑계로 풀 뽑기를 패스할 수 있다니 내심 좋기도 했다.


첫날부터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다. 집 밖으로 나와 마당과 집 주변을 살핀다. 주택에서는 배수가 아주 중요하다. 물이 고여있는 것은 좋지 않다. 산 주변이라 산사태의 위험에도 신경을 쓰고 대비를 해야 했다. 삽 한 자루를 사서 물이 고여있는 곳에 배수로를 만들어 줘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집을 들어오기 전 누수의 이슈가 있었는데. 해결되었다고 알고 들어왔지만 장마 첫날 거실에서 누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예전에 누수 이슈가 있던 부분에 그대로 똑같이 벽지가 젖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장마는 서서히 집에 누수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장마가 끝나면 수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누수를 고쳐주실 분이 집에 오셔서 집을 보고 가셨고 건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누수는 테라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본래 2층 테라스가 있는 집은 지붕이 없으면 누수 이슈가 생기기 좋은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은 누수, 단열, 방충, 통풍등 가장 기본적인 것이 중요했다. 관심을 가질수록 많은 것들을 알아간다. 용기 있게 떠나온 이후로 많은 삶의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는 기분이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손길을 주어야만 하는 게 전원주택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정이 들고 뜻깊게 추억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산에는 흰 구름이 피어나고 땅은 축축이 흠뻑 물을 머금고 있다. 비가 와도 아이들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마당을 돌아다닌다. 어른의 시각으로는 비를 맞으면 안 되고 큰일 날 일이지만 아이는 거리낌이 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래 비를.. 맞아도 되지. 근데 나는 왜 비를 맞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을까.. 비를 실컷 맞은 아이들을 목욕시키려 남편에게 들여보내고 에잇! 나도 좀 맞자 하고 마당에서 팔 벌리고 비를 맞았다. 온몸에 떨어지는 비의 감촉. 얼굴에 떨어지는 비. 주변에 보는 눈이 없으니 이렇게 비도 실컷 맞을 수 있구나. 좋다. 나는 원래 비 맞는 걸 최고로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잊고 있었다.


집과 농작물은 많은 장맛비를 견뎌내고 있고 산의 나무들도 힘껏 뿌리를 움켜쥐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자리에서 다들 잘 견디자. 견뎌주길 바란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다. 지구는 변하고 있다. 다들 무사히 각자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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