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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Jul 18. 2022

그분을 만나고야 말았다.

주택살이 최대의 난관

비가 오다가 멈추고 이내 더워지기를 반복하는 나날이다.


주말의 즉흥 집 캉스 - 외출을 할까 하다가 마당 한편에 그물막을 치고 욕조를 꺼내서 지하수를 받아주었다. 별거 아닌데 썩 괜찮은 캠핑 느낌이 난다. 아이들이 물에서 노는 동안 주방에서 과일을 꺼내오고 남편과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신다. 크아!. 이것도 나쁘지 않다. 굳이 어디를 가지 않아도- 그래 전원주택에 사는동안 이런 장점을 많이 누려봐야지


마당 집 캉스


남편이 김밥을 쌌다. 생전 요리를 안 하던 남편이 근래에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김밥을 잘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해 따로 주먹밥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집 앞에 있는 계곡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청정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이 주변으로 모여든다. 덕분에 우리는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이 계곡을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정수리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다.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기운이 계곡에서 뿜어져 나왔다. 차가운 만큼 청명한 느낌 또한 들었다. 첫째는 물론이고 둘째도 발을 담그고 돌과 흙 가지고 몰입하며 논다. 아이들에겐 아주 좋은 청정 자연 놀이터이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천연 놀이








장마가 한바탕 비를 퍼붓고 나서부터 갑자기 집에 벌레가 늘었다. 확실히 장마를 기점으로 거실에는 개미의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곱등이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본격적인 벌레들의 출몰이 시작되는 건가 싶었다. 내가 전원 주택살이를 너무 만만하게 봤었나.


게다가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가 시골살이에서 가장 우려하던 그분.. 최대 난제의 대상인 뱀을 만나고야 만 것이다. 그것도 집 데크 위에서...  아침에 아이 등교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데크 구석 실외기 쪽에 못 보던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나뭇잎이 붙었나? 설마 뱀 허물 같은 건가? 낯선 형체를 파악하려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아뿔싸 갑자기 그것이 스르르 움직인다.. 그것은 진짜 리얼 뱀이었다. 만나지 말아야 했을 뱀을 만나고야 만 것이다. 뱀은 실외기 어딘가로 몸을 감추었다. 나도 모르게 뱀이다! 하고 외치자. 남편과 아이가 다가왔다.


뱀을 보면 까무러치거나 마냥 징그럽고 혐오스러울 줄 알았는데 새끼 뱀을 딱 본 순간의 그 느낌은 의외로 깨끗하고 맑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말 이상도 하지. 청정지역에 사는 뱀이라 그런가.. 새끼여서 덜 혐오스러운 걸까. 직감적으로 해를 끼치는 독사 같은 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침착하게 다가가 보았다. 나도 뱀을 보고 내가 침착한 것에 놀랐다. 뱀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실외기 밑에서 작은 머리를 내밀었다 들어갔다 한다.. 아이는 멀지 감치 구경하고 남편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이 등교시간이 임박해서 일단 집을 나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찾아보니 뱀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만나고야 말았구나.. 뱀을 만나면 집안의 벌레 따위?? 는 아무렇지 않게 된다던데 정말이다. 개미와 곱등이 그리마 따위? 는 우습다. 너희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너희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뒤늦게 멘탈이 붕괴되고 갑자기 무서워지며 전원주택을 탈출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생각이 들쑥날쑥 떠오른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뱀과 곤충 퇴치의 현실적 방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세상을 살아가려면 독생 독존하면 살 수 없고 공생 공존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데 뱀과 벌레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부지런히 집을 정리하고 관리해야만 한다. 집안에 갑자기 많아진 개미 행렬은 산에 사는 모든 개미가 다 우리 집에 내려온 듯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한편에 굵은소금을 투척하자 뚝 멈췄다.


벌레와 출몰하는 생명체들의 문제.. 결국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하고 이런 곳에 살려면 받아 들일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는 걸 깨우쳐 가고 있었다. 개미는 소금으로 해결했고 뱀이 출몰한 실외기 아랫부분에는 나프탈렌과 생마늘을 일단 투척해보기로 했다. 통 안에 휴지를 넣고 석유를 조금 뿌려 적셔서 뱀이 출몰한 곳에 두고 접근을 막기로 했다. 마당을 다닐 때 긴 작대기로 툭툭 치며 다니다 보니 지금까지 뱀은 그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장마기간 중 해가 잠깐 뜬 날은 다시 열심히 풀을 뽑는다. 역시 풀 관리는 필수다. 장마로 며칠 건너뛰었다고 이리된 건가 싶기도 했다.


뱀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종을 울리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지네가 출몰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들과 자는 안방에서 발견되어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다. 내가 다 감수하더라도 결코 견딜 수 없는 두 가지가 뱀과 지네였는데 며칠 새에 보란듯이 다 출몰해버렸다. 집 안팎으로 난리가 났다. 뱀도 뱀이고 지네도 지네고 거미도 거미고 곱등이도 곱등이다. 나는 작은 인기척에도 한껏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뱀은 인기척을 내면 도망가고 밖에서만 조심하면 된다지만 닥치고 보니 지네가 더 큰 문제였다. 지네는 섬유를 좋아해서 옷과 이불속을 파고들며 물고 다닌다는데 아주 작은 틈도 비집고 들어와 나타나고야 만다는데 지네를 만난 순간 나는 신경 쇠약 수준으로 며칠 동안 극도로 예민해졌다. 창틈을 강박적으로 틀어막는 건 기본이고 밤에 잘 때도 어디선가 나타날까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결국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로 목 뒤가 뻣뻣해져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고통을 안게 되었다. 일단 안방의 창틈을 정말 모두 테이프로 바르는 수준으로 막고 콘센트도 다 막았다. 집 주변에 뿌리려고 퇴치약을 주문했다. 창문 모기장도 별도로 주문하고 아이들 모기장 텐트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는 필사의 움직임이었다. 손볼곳이 많아지니 정말 바빴다. 지인들에게 오는 전화들과 연락들에 응답은 뒷전이었다. 한동안은 정말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야말로 격동의 여름이다. 빨리 눈이 내리는 겨울이 왔으면..! 추위가 간절해졌다. 아직 시골살이 내공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혹독한 적응기를 거치고 있었다. 대대적인 방충 작업을 마치고서야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었다. 내가 결코 강심장이 아니라 뱀이랑 지네를 무서워하는 여리여리한 여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와중에 마을에서 알게 된 분이 직접 캐신 감자를 한가득 주고 가셨다. 시골에는 텃세가 있다는데 그런 것 느끼지 못하고 다들 잘해주시는 이웃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지네는 한 일주일 지나니 이것도 적응이 되는지 심적으로 많이 괜찮아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어떻게든 살게 되는 걸까.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사나 싶다가도- 해가지고 달이 뜨는 걸 보며 맞는 밤 냄새는 또 너어무 좋은 거다. 혹독하고 아찔한 격동의 여름 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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