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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Nov 14. 2022

보이지 않는

<In the shadow>




사위가 밤에 잠긴 절간. 촛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법당. 목탁을 울리고 법문을 읊습니다. 차르랑 거리는 종소리에 탱화도 함께 이글거리고 절을 하는 마음도 덩달아 혼곤합니다. 영가를 먹이고 씻깁니다. 가시라. 나아가시라 청합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훌훌. 천도. 꿇어앉은 나에게로 진언과 팥알이 아프게 쏟아내립니다. 마음을 챙기라. 굳건히 챙기라. 삿된 것에 나를 내어주지 말것이다. 호되게 혼이 납니다. 구병시식.


엄마의 꿈에 자꾸만 내 침대로 죽은 이모할머니가 와 눕는다고 합니다. 온갖 악을 쓰는 당신의 딸. 필히 귀병이 났다 하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내 딸의 모습이 아니다. 씌인 것이 분명하다. 물러가라.


당초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리고 간 일이었습니다. 고종사촌이 스스로 생을 버린지 얼마 되지 않은 마당에 딸이 이러하니 겁이 들기는 하였나봅니다. 의사는 급한대로 수액으로 약을 놓았고 나는 황급히 잠이 들었습니다. 약은 나의 기운을 한껏 앗아갑니다. 소리 낼 힘이 사라지고 끄덕끄덕 잠으로만 한세월입니다.


나는 이 병증에 대해 병원에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저, 남들 다 원하는 직장을 얻은 때이니 기뻐하라고, 나쁠 것 하나 없는 좋은 때라는 말. 그러니 이 병엔 도무지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나의 고통은 기소 즉시 각하되었습니다. 후에 엄마가 누군가와 하는 전화소리가 들려오는 중에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단어만 얼핏 챙겨놓았을 따름입니다.


잠잠해진 집 안은 아무 일이 없습니다. 거리낌 없는 평온한 일상. 저조차도 무사합니다. 멀쩡한 옷, 나오지 않는 눈물, 딱지마저 앉은 생채기. 무감한 회복입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세 가족의 동태를 면밀히 살핍니다. 마음에 맞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고요와 태평이라니. 이러자고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벌인 일입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다짐한 일입니다. 끝장을 보아야겠습니다. 약을 버립니다. 온 몸에서 약기운이 스멀스멀 빠져나갑니다. 온전해진 마음에서 괴로움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이 괴로움의 몫을 분배합니다. 당신들이 책임져야할 몫을 가져가라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젠 나 홀로 짊어지지 않겠다고.


나를 똑바로 보라는 말입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내다버린, 토해낸 온갖 마음의 오물들. 정성스럽게 꾸역꾸역 집어 삼키고 삼켜지던 나를. 겉으로 꾸며진 정직과 안온. 그 속에 꼼꼼히 들어찬 오기와 몰락, 속박, 그리고 거짓과 불편과 또한 너덜한 악의까지. 다 들어낼테니 바로 보라는 말입니다.


뒤처지지말고 고개돌리지도 말고 당신에게 달린 수백개의 모든 눈을 단 하나도 감지말고 따박따박 말해줄테니 그 귀를 깨끗이 씻어놓고 온 몸의 털을 죄 곤두세워서 똑바로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끝끝내.




그 집에서 물러난 것은 내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독방을 하나 새로 얻었습니다. 오직 나를 위한 깊은 방, 유독 검은 하늘이 빛나는 창 아래 홀로 앉았습니다. 빈 손이 아득하게 허전하여 가슴 한복판을 두드립니다. 나의 실체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며,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 하지만 이렇게 버젓이 있는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그 집은 오히려 완전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군더더기 같은 이 몸이 홀로 됨으로써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아 홀가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안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째서 나는 결국 혼자여야만 하는지. 서글픈 곁에 그 누구 하나가 없는 것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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