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작가 손지애
처음 텔레비전이 발명됐을 때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의 종말을 예측했다. 사람들이 화면까지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을 두고 소리만 나오는 라디오를 들을 리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라디오는 지금까지도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호소력과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음악은 라디오가 여전히 사랑받게 만드는 요소다.
이러한 디제이의 목소리 뒤에서 방송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라디오 방송작가다. 사람들은 디제이의 목소리를 듣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작가의 손끝에서 나온다.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가 손지애를 만났다.
/ ‘라디오 작가에요’라고 하면 뭘 쓰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라디오를 들으면 디제이 멘트가 있고 음악이 있고 코너가 있어요. 저는 방송에서 디제이가 하는 주요 멘트를 써요. 특히 방송이 시작되면 디제이가 가장 먼저 하는 멘트를 ‘오프닝’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과 음악을 듣고 와서 하는 ‘브릿지’라고 하는 멘트 등을 작가가 쓰죠.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코너를 기획하고 그 안에 들어가는 말, 그리고 제가 참여하는 방송은 음악방송이라 선곡도 같이 하고있어요.
/ 다른 방송과 라디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점이에요. 사내방송은 정보전달이 주 목적이고 텔레비전은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송출하죠. 텔레비전은 작가가 쓰는 멘트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포인트가 맞춰지는 반면 라디오는 귀로 듣는 메체고 말을 통해 이야기가 전달되기 때문에 언어라는 것에 상당히 예민해요. 그 점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해요.
/ 보통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진행할때 문자로 참여해 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사연을 보내달라기도 하고 신청곡을 청해달라고도 하는데 이를 통해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해요. 또 이러한 요소를 통해서 디제이, 제작진과 청취자가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가지게돼요. 라디오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짜여진 각본이 아니거든요.
어느정도 틀은 잡아놓지만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의 한줄 사연으로 다른 청취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고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반응을 할 때 저희도 영감을 받기도 해요.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하죠. 무엇보다 저희는 반응이 없으면 ‘잘못된 것이 있나? 오늘은 별론가?’하는 고민을 하게돼요. 이러한 점에서 소통이 중요한 것 같아요.
/ 장르에 따라 다르고 방송사에 따라 구성원과 과정은 달라져요. 시사, 예능같은 프로그램은 제작진의 수가 좀더 많아요. 뉴스는 섭외나 자료조사, 디제이 멘트 때문에 작가가 여러 명 있고 예능도 청취자 섭외나 게시판 관리 같은 이유로 비슷해요. 보통은 작가 2~3명에 피디, 음악 작가가 따로 있기도 하고 조연출 등이 있기도 하죠.
방송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는 밑작업을 하는 역할이에요. 방송 당일이나 전날 원고를 써요. 생방송이다보니 그 날에 맞는 테마와 흐름을 읽어야 하거든요. 이러한 내용에 맞춰 오프닝이나 코너를 쓰고 나면 피디, 음악작가 등 그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요. 이후에 피디가 내용을 조율하거나 음악작가가 선곡을 하죠. 최종 원고가 확정되면 디제이에게 전달돼요.
/ 제가 참여하는 방송은 단촐한 과정을 거치지만 회의를 거치는 방송도 있어요. 시사 프로그램과 같은 방송은 방송이 끝나고 난 뒤 다음 방송에 대한 내용을 논의해요. 논의 내용을 토대로 작가가 원고를 작성하면 이를 조금 수정하는 식이죠. 하지만 일단 작가가 어느정도 경력을 갖추면 선택과 구성에 많은 참견이 들어오지는 않아요.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정하는 회의 외에는 작가의 감성을 존중해주죠.
저는 음악프로그램 작가라 회의를 하는 과정은 없어요. 다만 원고를 작성하면 그것을 토대로 선곡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해요. 방송에 관해 주고받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원고에 어울린다 하면 끌어내 쓰기도 하는 정도에요.
/ 공감이에요. 음악방송 작가는 그 날 하루를 스케치해주고 와닿는 이야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고 풀어야 하는 것이 중요해요.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풀어내야 하니 고민이 많아요. 저만의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하는데 가볍지만 가볍지 않게 하려고 신경쓰죠. 이를테면 표현은 아는 언니와 대화하듯 부담스럽지 않지만 내용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도록, 그래서 그 안에 몰랐던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거나 잊고 있었지만 들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넣는 다거나 해요. 뻔하지 않게 쓰려고 글의 투라던가 스타일을 늘 생각하며 원고를 쓰죠.
/ 이전에 2년 정도 밤 8시부터 10시까지 하는 팝 음악프로그램을 했어요. 그 방송이 제 감성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지요. 디제이의 목소리도 제 원고와 잘 맞았어요. 그래서 디제이의 목소리와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잘 맞아 좀 더 자유롭게 원고를 썼던 것 같아요. 주로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였어요. 청취자들의 연세도 있었기 때문에 밝은 면만 담기보다 삶의 슬픈 면이나 애잔한 이야기,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추억들을 많이 다뤘어요.
라디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의외로 남자 청취자들이 많이 울었어요. 오늘도 울고 간다 그런 문자가 오기도 했죠. 그러면 저희도 방송을 하면서 같이 울었어요. 그런 이야기도 들었죠. ‘지가 쓰고 지가 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때 방송을 이야기하는 청취자가 많아서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다시 그런 프로그램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방송작가가 글을 쓸때는 책에 담는 글자가 아닌 디제이의 입을 통한 말을 써야 해요. 그래서 디제이의 말투를 고려해서 쓰거든요. 내용을 생각한 다음 이것을 디제이가 말했을 때 어떤 말투가 편할 것인가. 내가 마치 디제이가 된 것처럼 상상해서 쓰거든요. 머리로 상상하기도 하고 직접 디제이처럼 읽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가 직접 진행하는 모습을 떠올릴 때도 있어요.
/ 방송국에서 만난 아나운서 언니와 교회 모임을 가졌었어요. 그 안에서 성경을 소리내서 읽기도 했는데 그것을 들은 아나운서가 제게 ‘목소리가 좋고 발음이 좋은데 아나운서를 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그 때 저는 막내작가였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도 마음 한편에 ‘내가 그렇게 잘하나?’하는 마음을 품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제가 다니는 교회 뉴스에 아나운서로 참여하게 된거에요. 아나운서를 하다보니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온라인 아나운서 과정도 수료했어요. 이후에 얼마 안돼 그 아나운서 언니가 다른 방송국 피디로 입사하게 되면서 날씨 리포터 자리를 권했어요. 벌써 약 7년이나 날씨정보와 교회 뉴스 아나운서를 하고있어요. 이러한 경험이 원고를 쓰는데도 도움이 많이 돼요. 말을 하는 사람의 감각이 생기니 도움이 많이 되죠.
/ 상상만 했을 때와 직접 경험했을 때의 차이인 것 같아요. 원고를 쓰기만 할 때는 디제이가 읽는다고 상상해도 아무래도 말하는 글 보다는 읽는 글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문장도 길어지고 바로 말하기에 어려운 글이 되는데 아나운서 경험을 하고부터는 입에 달라붙고 쉬운 표현을 더 잘 쓰게 됐어요.
/ KBS 클래식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과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 라는 방송을 자주 들어요. 세상의 모든 음악은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코너가 있고 디제이 멘트도 차분하고 정적이어서 좋아해요. 우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꿈과 음악사이는 거의 90년대 이후 가요가 나오는데 그 방송도 디제이 목소리가 편안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익숙한 노래가 많이 흘러나와 듣고있어요.
/ 많은 영감을 받아요. 감이라고 할까요? 처음 라디오를 들을 때는 쉽게 들리니 만들기도 쉬울줄 알았는데 사실 아주 미세한 톤 조절이 필요해요. 밝기조절이라고 할까요? 어찌보면 차분하고 조금 우울한듯한 거기서 조금 더 밝은 더 나아가 아주 발랄하고 말도 많은 프로그램 식으로 조금씩 톤의 조절이 있어요. 좋아하는 방송을 들으면서 톤 조절이나 오프닝을 풀어내는 방식에 영향을 받아요. 가끔은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 제가 늘 추구하는 방송은 위로가 있는 방송이에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청취자들을 볼수록 세상에 힘든 사람이 많고 어쩌면 요즘같은 시대에 라디오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의연해 보여도 속으로는 마음이 여리고 눈물도 많고 상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디오가 뭐라고 디제이의 멘트 하나, 음악 한곡, 코너에서 위로가 된다고 하는지. 그런 문자가 올 때 마다 제가 뿌듯함을 느껴요. 라디오가 하는 기능 중 재미도 있고 정보 전달도 있지만 저는 위로가 되는 방송을 하고싶어요.
/ 제가 대학을 갈 때 우연하게 문예창작과를 가게 됐어요. 본래 목표는 심리학과를 전공해서 광고 일을 하고 싶었는데 수능을 잘 못 본 거죠. 그 점수에 맞추려다가 갑자기 문예창작과라는 학과가 훅 들어왔어요. 그런 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이전에도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제가 글을 본격적으로 쓸 생각은 없었거든요. 문예창작과에 들어가보니 친구나 선배중에 방송작가를 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3~4 학년때부터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가서 방송작가 과정을 듣는 친구도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방송작가를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광고 쪽을 하고싶었으니까 상업적인 카피라이터나 아니면 소설가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신춘문예도 도전을 했는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떨어졌어요.
고민을 하는 중에 방송작가 친구가 제가 쓴 글을 보고 방송일을 잘 할것 같다고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방송국은 개편 때가 되면 작가를 모집하는데 그 때 도전해보라고 조언을 해줬어요. 그렇게 소개를 받아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서 방송 작가 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저랑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일찍부터 하려고 할 걸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작가요. 제가 11년차 작가생활을 하고있지만 라디오 작가는 수명이 길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아는 만큼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사람들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싶어요. 그 말은 오래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60대 혹은 70대가 되어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Profile
kawa22ja@nate.com
11년차 라디오 방송작가. 현재 경기방송 팝음악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있다.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EBS와 극동방송을 거쳤다. 방송작가 외에도 열린교회 아나운서 및 극동방송 날씨 리포터로 약 7년째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