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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x Sep 03. 2024

열망까지 벤치마킹할 수 있나요?

참회록

"유통의 비효율" 문제는 확실히 존재한다.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할증 문제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서나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해결한 핀둬둬를 철저히 벤치마킹하는 것이 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중요한 두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이 문제가 과연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이 문제가 정말 우리가 간절히 풀고자 하는 문제인가?


산지에서 시작되는 유통의 일반적인 단계는 이렇다.

생산자 즉, 농부는 수확한 작물을 경매장으로 보낸다.

경매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도 있지만 경매인의 역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때로는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혹은 거의 비슷한 가격에 도매상에게 넘어가기도 한다.

여기서 농부의 매출이 결정된다.

도매상에서 바로 마트나 전통시장으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중간상을 거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드디어 소비자에게 보여질 매대에 놓여진다.

이 과정에서 각 단계마다 운송비, 보관비, 마진 등이 추가되고

매대에서는 포장, 진열, 판촉, 고객불만, 환불 등의 비용이 추가된다.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보내는 것이 C2M, 즉 생산자 직거래 방식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농사짓는 것도 힘든데, 농부가 포장, 배송까지 해야 한다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대량으로? 배송만 하면 끝이 아니다. 반품, 환불, 고객 응대까지. 온라인 판매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신속하고 친절해야 하는 CS(고객 서비스)까지 농부가 전담해야 한다. 아무리 제값을 받는다 해도, 이 모든 과정을 눈이 높아진 소비자의 기준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농부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경매에 작물을 넘긴다. 이를 대신 해줄 곳이 없진 않다. 지역 농협, 1차 벤더사, 대형마트와의 계약 재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코딩으로 해결할 수 있는것은 극히 일부다.


진짜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만들어지는 코드나 디자인이 아니었다.

산지와 제조사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며 현실을 직시했다. 이 "유통의 비효율"은 단순히 앱 하나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개발이 아닌 다른 "기술"이 필요했다. 설득해야 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야 하며, 오랜 관습을 타파하고, 시설과 설비에 투자하고, 정책까지 제안해야 했다.


이 문제가 정말 우리가 간절히 풀고자 한 문제였을까?

기깔나는 프로덕트를 만든다고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장애물 없는 길은 없었다. 심지어 유통의 단계를 모두 없애도, 시중보다 가격이 더 높아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농부에게 제값을 주고, 낮은 수수료만 붙여 판매를 시작했지만,  제값 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경매로 넘어간 작물이 유통 마진을 붙여도 더 저렴했다. C2M이 더 비싸지는 경우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나니, 내가 무엇에 사로잡혔는지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유통의 비효율"을 해결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핀둬둬가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에 이끌렸던 걸까? 솔직해질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열망했던 것은 "유통의 비효율" 그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집착했던 것은 핀둬둬의 성공적인 프로덕트였다. 획기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모으고, 유지시키고, 판매하는 현란한 기법과 그로인한 어마무시한 성과에 매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가능하게 한 프로덕트를 내 손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상 내게 ‘유통의 비효율’ 이라는 문제는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형식적인 공감이었음을 자백한다.


이것은 나의 참회다.

벤치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문제 해결을 향한 그 "열망"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다.


그래서 그럼 이대로 인정하고 끝인가? 그럴 순 없었다!

빠른 실패와 수만 번의 시도가 바로 작은 조직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 아닌가?


(다음에 이어서...)


*C2M 이야기 조금 더

농수산물 C2M을 가격으로만 접근하면 겪게 되는 큰 어려움 2가지

첫 번째, 앞서 언급한 것처럼 C2M이 항상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다.

두 번째, 균일한 품질로 대량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산지 직거래가 저렴할 때도 있지만 늘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선도, 특정 생산자와의 신뢰, 희소성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SKU의 한계가 불가피해지며, 결국 규모의 확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조사에서 직접 소비자에게로 가는 C2M 역시 '가격 우위'의 영역에서 안전하지 않다. 브랜드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 품질과 가격이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게 되면, 원가 판매나 재고 물량의 소진, 혹은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를 견뎌내기 어렵다. 시장은 가격 외의 가치를 요구한다.



*이 글은 PM 개인의 소회이며, 회사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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