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긍정 훈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아 Aug 30. 2021

Connection before Correction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긍정 훈육 2

우리에게는 진리와 원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혹은 정한 진리와 원칙은 다를 수 있다.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큰 사회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맞추어가야 할 것이고, 이는 존중 어린 대화와 토론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된다. 또한 굵직한 원칙이 합의되었다 할지라도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다름을 인정해야 함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 각자가 받아들이는 정도와 속도 또한 개인차가 있음도 물론이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이러한 진리와 원칙을 따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을 ‘훈육’이라고, 긍정 훈육(Positive Discipline)을 연구 및 실천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은 정의하고 있다. 나도 이에 동의하면서 어떻게 잘 훈육할 수 있을지를 함께 연구하고 실천해 왔다. 이 정의는 우리가 대개 경험적으로 알고 접해 온 훈육이라는 말의 의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훈육을 누구에게 적용하는가? 일단 내가 가진 진리와 원칙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를 자기 훈육(Self-Discipline)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과 순간에도 자기 훈육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성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 적용하겠는가? 당연히 내가 가르칠 책임이 있는 내 자녀나 제자들에게 적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나름의 진리와 원칙을 가지고 이를 전수하고자, 아니 그들에게 잘 내면화되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훈련할 것이다.


자, 우리가 가진 진리와 원칙을 잘 배우도록 가르쳐서 멋지게 성장하도록 부단히 훈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마음이 급하고 훈육에 진심이다. 나 자신을 훈육하는 것에도 급하지만, 내 자녀들에게는 더 급하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내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내 통제권 안에 두고 제대로 가르쳐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더 밀려온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진리와 원칙을 말로 내세우며 마구 가르침의 내용을 들이댄다. 나 자신에게도 그런 편이고, 자녀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너무 중요하니까, 너무 옳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나 자신에게, 내 자녀들에게 너무 유익하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살피면서 유순하게 지혜롭게 훈육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런 훈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데다, 그것을 잘 알아차릴 센스도, 기술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우리에게 긍정 훈육이 내세우는 유명한 명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이것, [Connection before Correction]이다. 이 말은 긍정 훈육에서 정말 엄청 자주 언급되고, 제시되고, 활용된다. 그리고 사실 이 개념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은 가정이나 교실에서 행할 나의 훈육에도 매우 유용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번역하자면(영어에 비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행동 교정 전에 연결이 먼저’, 또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따지기 전에 관계 형성부터’ 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겠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와 원칙이 아무리 중요하고 옳아도, 가르치는 나와 배우는 자가 연결이 먼저 되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연결되어있는 상태가 맞냐는 것이다. 사이가 좋고, 서로 친밀하냐는 것이다. 오해 없이 내 가르침이 상대에게 스며들 수 있냐는 것이다. 부모나 교사들은 대개 착각한다. ‘내가 지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데, 내 마음 당연히 알지? 우리는 한마음이야.’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이는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듣고 있거나, 듣고 있는 척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평소에 좋고 친밀한 관계이었더라도 상황에 따라 끊어진 채 가르침이 급히 들어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좋은 관계였더라도, 옳은 소리로 들이대고 말이 길어지면(잔소리가 2절 3절) 여지없이 연결은 끊겨 버린다. 연결이 끊긴 채 전송하는 데이터는 영영 전송되지 않는다. 연결이 되어 있는지는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관계의 과제인 셈이다. 그리고 가르침과 훈련을 지속하는 순간순간 연결이 유지되고 있는지도 우리의 가르침과 훈련의 내용에 포함되야 하는 것이다. 훈육을 하되, 부정 훈육하지 말고, 긍정 훈육하자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방법의 선함이 받쳐질 때, 우리가 가르치려는 진리와 원칙은 오롯이 지켜지고 전달된다.


우리의 가르침이 의미 있으려면, 아이에게 닿으려면, 아이의 행동 변화에 영향력을 끼치려면, 우리는 연결을 신경 써야 한다. 한번이 아니라, 과거에 돈독히 해뒀다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매 순간 말이다. (물론 과거로부터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신뢰가 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잘못을 좀 더 쉽게 용서해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연결을 위해 우리는 진심으로 아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존엄과 존중은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대접을 받음으로써 경험하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된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며,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겠다면서 존재까지 흠집 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기 저기서 자책하고, 진한 반성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혹여나 그런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당부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훈육도 아이에게 신경써야 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사이가 좋고, 나는 나와 잘 연결되어 있는지 살피고 나서 나를 가르쳤으면 한다. 잘못만 콕콕 집어 나무라지 말고, ‘셀프 토닥’과 ‘셀프 괜찮아’를 해 가며 나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며 성숙해 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 자신을 부정 훈육하지 않고, 온전히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긍정 훈육하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positivediscipline.com/articles/connection-correction-0
매거진의 이전글 행동 이면의 신념 바라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