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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Feb 07. 2024

로또 같은 내 남편

안 맞아~ 안 맞아, 진짜! 로또가 따로 없어!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오늘도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있다.

남편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한때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었던 나 보다 드라마를 더 많이 본다. 간혹 모니터 할 드라마를 놓치거나 정주행 중이던 드라마 회차를 놓쳐 남편에게 물어보면 캐릭터, 줄거리, 스토리 라인을 주르륵~~ 말해줄 정도니 말 다 했다. 배우도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다~ 본다. ^ ^

남편이 TV리모컨을 집어 들면 나는 서고가 있는 곳으로 피신(?)한다.

사실 난 드라마보다는 책 읽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TV를 보는 남편의 눈꼬리가 순하게 쳐지고 눈동자가 초롱초롱한걸 보니,

오늘도 손에 들린 리모컨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까지 졸다 잠이 들게 뻔하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나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식성을 놓고 보면 가리는 음식 없지만 맵찔이(코 찔찔~ ^ ^)인 남편과 달리

난 은근히 가리는 음식도 많고 무엇보다 아주~아주~~ 매콤한 걸 잘 먹는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은 믹스커피!'를 주장하며 믹스커피를 마신다.

신체와 감정의 온도 차이도 다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과 서늘한 걸 좋아하는 나는 겨울만 되면 보일러 온도 1도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다.

뼛속까지 감성적인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이놈의) 감성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한 반면,

의외로 남편은 감정이 평준화(??)가 잘 되어 있어 어떤 일에도 큰 감정의 변화가 없고 늘 침착하다.

산책(걷기)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세상에 사람에 궁금한 것이 많은 오지랖 떠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나도 피해 안 받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것 같고, 

역마살인지 방랑병인지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정말 안 맞는 건 남편은 고양이를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데 아무튼 달라서 그래서 안 맞는 부분이 정말 많다.


"엄마랑 아빠랑 진짜 안 맞네~ 로또네, 로또!"

"로또도 가끔 한 두 개 맞을 때도 있긴 한데... 이렇게 안 맞는다고?"


오죽하면 아이들이 말할 정도다.

이렇게 안 맞는 우리가 어떻게 만나 어쩌다 사랑을 하고

가정까지 이루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서로 비슷한 부부가 잘 살까? 서로 다른 부부가 잘 살까?

어떤 사람은 부부가 서로 비슷해야 큰 갈등 없이 잘 산다는 의견도 있고,

톱니바퀴처럼 서로 달라야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며 잘 산다는 의견도 있다.

역시... 1997년 수능 수리 29번 문항만큼(정답률 0.08%)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 ^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부모의 이혼, 가정폭력,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해 나이에 맞지 않게(?)

매일매일 걱정과 불안감을 털어내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결국 온전한 가정, 이상적인 배우자는 내겐 욕망이자 콤플렉스로 남았다.


결핍과 불안함으로 껴안고 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고,

삶의 각 시기에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며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매사 경계하고 고달픈 나와 다르게 그는 성정이 곧고 온순했다.

명절엔 일가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일엔 생일파티를 하며 가족들과 축하의 말을 주고받고,

아플 땐 가족의 보살핌과 조력을 받아도 된다는 것을,

가족끼리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언제든지 주고받아도 이상할 것 없다는 것을

나는, 모두,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다.  

내가 늘 콤플렉스처럼 끌어안고 있던 불안감 중 하나였던

'부모 복 없음 배우자 복도 없다'는 근거 없는 말을 끊어 준 것이 남편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어쩌다 새벽에 깨어 화장실에 다녀오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서 있을 때면

남편과 함께 이루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한 번에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 지곤 했으니까.

곧 숨이 끊어질 듯한 컥컥 대는 남편의 코코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또 드라마 보다 잠이 들었나 보다.

소파에 기대(소파가 등받이냐고요~)느라 고개가 직각으로 꺾인 남편의 머리 밑으로

베개를 밀어 넣어주며 "잘 거면 편하게 누워서 자"라고 말했다.

선잠에 깨 놀라 허둥대던 남편의 눈빛이 내 눈과 마주치자 순둥순둥 해졌다.

그 눈빛을 보니 새벽에 홀로 깨 거실에 서 있었을 때의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그래! 당신은 나의 로또가 맞다.

 814만 5060분의 1 아니! 80억 인구 중 나만이 당첨된 로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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