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직 후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제 회사 적응은 좀 되었어요?"
그때마다 내 대답은 달랐는데, 다 되었다고 할 때도 있고 평생 걸릴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답에 일관성이 없는 나를 곰곰이 돌아보니, 적응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완전히 적응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달까.
이직 후의 단기적인 목표를 적응에 두는 것이 일견 바람직해 보일 수 있지만, 회사에서 외부인을 채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뜩이나 공채 출신의 유능한 인력이 모든 function에 포진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나 같은 사람을 데려온 이유는, 내부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외부자의 시각에서 접근해 주기를 기대해서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동화되어(사실 그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내부인과 같아져 버리는 것은 회사에서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대기업 같이 한 사람의 평생 이상으로 업력이 긴 회사의 경우, 그 깊이와 폭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아득해져서 행동은 조심스럽고 더뎌진다. 행동양식을 회사에 맞추려는 노력은 늘 미끄러질 수밖에 없으며, 내가 발견한 문제는 대부분이 한 번쯤 검토했던 것이고, 시도해 본 것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고 반복되었던 문제인데 지금까지 바꾸지 못했다면, 사실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는 바꿀 수 없지 않을까.
이런 식의 내/외부 프레임 속에서 생각이 도는 것 자체가 사실 소모적이고 깝깝시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일을 하러 온 것이고 집중해야 할 것은 회사와 얼라인 된 Mission.
외부자의 시선을 놓지 않고 기존 일들을 살펴보면, 방치되어 온 일들이 보인다. 기존 문화에서 가치가 폄하되었거나, 일이 아닌 일들인데 세상이 변화하여 일이 된 것들. 무지하기 때문에 보이는 이런 틈새에 있던 일들을 발견하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동료들에게도 그 중요성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적응하러 온 게 아니고, 일이 되게 하러 온 것이며, 그 와중에 적응은 자연스레 되는 것. 적응은 다름 아닌 동료들과 일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배워야 하는 것이기도, 또 새롭게 방법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응이라는 주제만큼은 능동태보다 수동태를 적극 차용하며, 힘을 뺄 필요가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