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타, 엘로라 석굴 사원
이 글은 오래전 불교 잡지에 <붓다 따라 삼만리>라는 이름으로 연간 연재했던 불교국가 여행기입니다.
현재의 정보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점, 염두에 두고 읽어 주세요. :)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다. 현재 인도의 불교도는 전체 인구의 0.8%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인도인들에게 내가 믿는 불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인도의 힌두교는 다문화와 다종교를 모두 융합해서 녹여내는 용광로와 닮았다. 인도인들은 불교도 힌두교에 소속된 신앙 중 하나로 여기며, 심지어 붓다는 힌두교의 신 비쉬누(Vishnu)의 10가지 아바타 중 9 번째 화신이라고 여길 정도다.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는 불교와 붓다가 정작 고향에서는 이처럼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것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가장 의아한 점 중 하나였다.
이런 연유로 인도에서 볼 수 있는 불교 유적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기대 이상의 찬란함과 화려함으로 아쉬움을 채워 주고 있다. 아름다움의 극치를 품고 있는 불교 유적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자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나의 여정은 불교의 미를 따라 중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로 향한다.
황량한 데칸 고원에 자리 잡은 거대하고 비밀스러운 아잔타 석굴 사원
내륙 지방에 위치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는 7월 무렵이면 기온이 무려 40도에 육박하는 데칸 고원 한가운데의 지리적 요충지이다. 끝없는 광대함과 다양함을 지닌 인도의 지리적 중심부에 도착하고 보니 새삼 우리나라가 아담하고 귀엽게 느껴진다.
아잔타 석굴 사원에는 기원전 2-1 세기에 걸쳐 조성된 전기 석굴군과 기원후 5-7 세기까지 조성된 후기 석굴군을 포함하여 총 28개의 석굴 사원이 있다. 황량한 데칸 고원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아잔타 석굴 사원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결코 스스로를 아무에게나 내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나는 무려 1100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비밀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잔타에서 만난 신비로운 불국토의 이상 세계
내 인상 속에 남아 있던 아잔타 석굴의 이미지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은 보살을 그려낸 회화이다. 은은한 색채와 유려한 신체의 곡선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더없이 온화하면서 평온한 표정을 한 보살의 이미지는 인도 회화의 특징을 오롯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인도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언젠가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지 8년 만에 드디어 이곳에 서있게 되었다.
내가 마음에 담았던 그 벽화를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1 굴에 들어서자 관리자가 내 앞의 단체 팀을 위해 플래시를 비춰줬다. 그러자 검은빛이었던 사방이 너무나 오묘하고 은은하게 제 색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나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유산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던 그 순간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봤던 그 벽화는 이 아름다움 중 극히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연꽃을 들고 있는 지연화 보살(持蓮花 菩薩, 보디사따바 빠드마빠니, Bodhisattava Padmapani)은 더 없는 기품을 은은하게 뿜어 내고 있었다. 사방이 은은한 채도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빛나고 있었고, 나는 아름다운 불국토의 한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인도 불교도들은 자신들이 그렸던 이상적인 불국토의 모습을 사람들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이 곳 아잔타에 구현해 두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6번 굴은 ‘빈사의 공주(Dying Princess)’ 벽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석가모니의 이복동생인 난다가 출가를 결심하자 그의 아내 순다리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특히 그녀의 슬픔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인도 회화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17번 굴에 들어섰을 때에도 역시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벽화들로 둘러싸인 모습에 넋을 놓고 올려다보았다. 19번 굴은 ‘조각가들의 보물 상자’라는 별명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가득하여 언덕 중턱에 이토록 완벽한 사원을 조성해 놓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잔타 유적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 언덕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다른 일반 여행자들이라면 이 최고의 광경을 무심히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불국토를 나 홀로 경험한 것 같은 기분에 비밀을 간직한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불교 유적이 건설한 이상적인 불국토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지 모를 시간이었다.
세 종교가 어우러진 관용의 불교 유적, 엘로라 석굴 사원
지금은 힌두교 사원으로 분류되는 엘로라 사원은 건축 초기에는 불교 사원을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다. 이곳은 바위를 유려하고 손쉽게 조각해낸 기술로 매우 유명하다. 엘로라 사원은 아우랑가바드의 북서쪽 근교에 위치한 석굴 사원으로 특히 유명한 곳은 16번째 사원이다. 바로 바위산 전체를 깎아 내려가서 만든 카일라시 사원(Kailash Temple)이다. 카일라시는 현재 티베트 지역에 있는 수미산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불교 신도들에게 세계의 중심을 떠받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곳은 힌두교, 뵌포교 등 많은 종교의 성지로 받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북인도 사원에서 가장 높은 탑을 시카라라고 하는데, 이 또한 카일라시를 상징하는 것이다. 현재 이 카일라쉬 사원은 힌두교의 주신인 파괴의 신 쉬바에게 헌정되어 있다. 카일라쉬 사원을 마주했을 때, 더없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모습에 한동안 놀라움만이 가득했다.
5, 6, 10, 11, 12번 굴은 엘로라 유적의 불교 사원으로, 전성기가 이미 지난 양식이지만 내게는 여전히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6번 굴에 있는 엘로라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인 타라(Tara)는 우리나라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이므로, 이 당시 인도 불교가 이미 보살 신앙의 대승 불교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인도의 종교적 관용의 정신
엘로라 석굴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실 정교한 조각 기술과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보다 같은 장소에 불교, 힌두교, 자인교 등 여러 종교가 시차를 두고 거쳐 갔는데도 인위적인 훼손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한 장소에 여러 종교의 신전과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각 종교가 서로를 인정했던 고대 인도 특유의 종교적 관용 정신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 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불교의 탄생지답게 관용의 정신이 다양한 역사를 지닌 이 사회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해준 것 같았다.
오히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인도 내부와 인접 국가와의 종교적 분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현대의 인도인들이 조상의 관용적인 태도를 본받아 종교 간의 조화를 지혜롭게 추구해 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가장 찬란한 불교 유적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