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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Aug 21. 2024

[별에서 온 그대]


능력자 남주가 등장하는 고전인데 계속 안 보고 있다가 이번에 도전했다.

방영 당시에는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봤다가

나중에는 바로바로 등장하는 드라마보기 바빠서 예전 드라마가 잘 손이 안 갔다.


그리고 내겐 이상한 버릇이 있다.

드라마 낯가림.

안 보던 드라마에 잘 손이 안 간다. 

첫편 보는 게 왜 이렇게 무서울까?

새로운 인물들, 특히 1화엔 무지 쎈 갈등과 호들갑이 나올 게 뻔하니 잘 안 보고 싶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게 무척 싫은 듯 하다. 


아무튼 내 버릇을 뛰어 넘어 일단 시작했다.

최근에 나름 괜찮게 본 박지은 작가님의 <눈물의 여왕>의 흐름을 타서 그런지 갑자기 별그대가 떠올랐다. 

앳된 김수현 배우도 반가웠고 작가님 특유의 코믹한 상황과 대사들,

그리고 적절한 갈등 상황과 짜임이 좋았다. 


여주인 천송이는 탑배우이며 매력적인 인물이다.

전지현 배우가 잘 소화한 것도 있지만 캐릭터 자체가 귀엽고 매력있게 그려졌다.

탑배우이고 제멋대로에 한 성격해서 재수 없을 수 있지만,

자기 무식함을 세상에 드러내서 그것 때문에 속상해서 아이처럼 우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너무 솔직해서 문제지만, 음흉하지는 않다.

겉과 속이 똑같은 캐릭터라 호감인 캐릭터였다. 

10년 전 자신을 교통사고로부터 구해준 아저씨에 대한 순애보도 간직하고 있고,

자신을 짝사랑하는 휘경이의 마음을 알고도 농락하지는 않는다. (재벌인데도)

세미가 얄미운 여우짓을 할 때도 대인배처럼 감싸주는 의리도 있는 여자다.

선배한테도 할 말은 하는 사이다 면모를 가져서, 그런 시원시원함을 보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남주인 도민준은 당연히 멋진 캐릭터인데 나름의 상처와 귀여움이 있다. 

특히 아주 예전부터 살아오면서 조선시대 남자처럼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면이 매력 포인트다.

속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인데 겉모습은 소년미 있는 미남이라 그 간극도 좋았다. 

거의 뱀파이어 캐릭터와 결을 같이 해서, 수백년을 살아온 인물이 가지는 외로움은 그대로 가져간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는 인간 때문에 상처 받고 외로워하는 인물.

특히 과거에 마음을 주었떤 소녀를 잃은 뒤 그 마음의 상처가 크다.

또 점점 외계 능력을 잃어가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데 그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

외계인은 인간의 타액이 치명타라는 설정도 로코에 있어 극적으로 작용했다.

능력있는 캐릭터에는 이런 약점이 필수적인 것 같다. 

게다가 3개월 후, 유성이 돌아오면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야 한다. 이 리미트 또한 절묘했다. 



천송이는 유명하지만 무식해서 대중의 조롱을 받고, 

이런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다니던 대학교에 열심히 다니는 척 하는데

하필 담당 문학 교수가 도민준이다. 

도민준은 천송이의 바로 옆집 이웃으로 그 전날 갈등을 빚은 터라 더욱 복잡한 사제간이 된다. 

처음엔 혐관.

천송이는 고지식한 도민준이 싫고, 도민준은 시끄럽고 꼼수를 바라는 천송이가 싫다. 

하지만 도민준은 인간보다 청력이 좋아서 천송이가 집에서 힘들어하는 말들을 듣게 되고 신경이 쓰인다. 

더구나 도민준은 미래를 예지하는데, 천송이가 위험에 처하는 미래가 보여서 가만 둘 수가 없다.

갑작스런 선배 배우의 죽음으로, 천송이는 선배를 괴롭혀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

대중의 눈을 피해 도민준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급속히 가까워진다. 


한편 과거의 이야기가 투트랙으로 보여진다.

도민준이 처음 지구에 와서 겪은 일로, 과부가 되어 시가 쪽 사람들에게 쫓기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도민준의 마음에 남아있는데, 

10년 전 소녀와 똑같이 생긴 소녀를 구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천송이였고, 천송이에 대한 미래만 보이는 것도 두 사람의 인연을 암시하는 듯 해서

도민준은 자꾸만 천송이가 신경 쓰이고 마음이 간다. 


천송이가 먼저 도민준을 사랑하게 된다. 

항상 사랑만 받아봐서 도민준도 자길 사랑해줄 줄 알았는데 도민준은 끄떡 없어서 괴로운 천송이.

게다가 선배 배우 자살 때문에 이미지가 나락을 가버려서 주연에서 조연 신세가 된다.

명예도 돈도 잃고, 절친이었던 세미한테도 배신당해 바닥을 기는 신세.

그런 처지에서 옆에 남은 건 도민준이었으니 도민준에게 당연히 마음이 간다. 

그리고 점점 어렸을 때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와 도민준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도민준은 자기 별로 돌아가기 전이라 천송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괴로워한다.

일부러 천송이한테 차갑게 대할 수밖에 없다. 


극적인 상황들로 두 인물의 로맨스가 붙는 한편, 확실한 빌런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빌런인 휘경의 형 재경은 자신의 범행에 결정적 증언을 할 수 있는 천송이를 죽이려 하고

이를 알게 된 도민준이 나선다.

천송이에게 외계인인 것을 밝히고, 또 천송이를 구하려다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자기 정체를 밝힌다.

천송이 때문에 도민준은 점점 위기에 처하며, 능력 또한불안정해진다. 


천송이가 도민준의 정체를 알게 되는 시점이 생각보다 늦었다.

20화 중 16화 정도였나. 

그 전까지 둘 만의 감정으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이 대단하다.

얼른 도민준의 정체를 밝혀서 그 사건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을 텐데.

현재의 관계성과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빌런과의 대결도 적절했고

여러 구성을 절묘하게 끌고 가는 스토리텔링이 대단했다.

그러면서도 코믹한 상황과 대사들로 보는 데 지루함이 없었다.


역시 빌런 설정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민준의 능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빌런과의 힘도 대등해지고, 

빌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더 커지는 계기도 된다.


빌런과 과거의 인연(운명) 

이 점이 둘의 로맨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또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한다. 


마지막 화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20화 대장정을 지나면서 나도 문득, 이 스토리를 진행하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뭘까 

그런 생각이 드는 참이었는데 마지막에 작가는 천송이의 입을 빌려 뜻을 전했다.

천송이는 도민준을 잃어봤고, 지금은 도민준이 지구와 자기별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언제 도민준이 사라질지 모른다.

천송이는 그런 불안함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민준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산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하는 것.

그 결말이 마음에 들었고 잔잔한 여운도 오래 갔다. 




외계인 남주라는 황당한 설정임에도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후에 도깨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여러 비슷한 점들도 보였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강점과 약점을 심어주어 그럴 듯 하게 만드는 점도 좋았다. 

능력자 인물을 설정할 때 참고할 지점이 많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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