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T도코모
「話したい」
これ以上の用件はありません。
‘이야기하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은 용건은 없습니다.
- NTT 도코모 포스터(2002)
“오오~ 정 교수.”
어머니는 언제나 똑같은 멘트로 전화를 받으신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이후로는 언제나 장난스러운 톤으로 ‘정 교수’라고 부르신다. 겸임교수로 한 과목을 맡고 있는 것인 데다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밖에서는 교수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괜히 쑥스럽다. 하지만, 아들이 교수로 불린다는 것을 기뻐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열심히 호응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네~ 정 교수입니다, 임 여사님. 오늘도 운동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어머니가 일과를 읊어주신다. 어머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오전에 탁구 교실에 나가신다. 그리고 나면, 점심 식사 후 아파트 옆 뚝방길에서 만 보를 채워 걷거나, 기구 운동을 30분 정도 하신다. 낮에 간단한 집안 일을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신다. 피곤한 날이면, 소파에서 유튜브와 드라마를 챙겨 보신다. 가끔 동창 모임이나 보건소의 물리치료가 추가된다. 이모와 몇 시간씩 통화를 하시는 날도 있다.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는 일정은 대개 이 범주 안에 있다.
변함없는 일정 확인 후에는 내 일과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진다. 브리핑이라고 해도, 어떤 일을 했고, 저녁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 수준이다. 촬영이나 출장이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설명이 길어지기도 한다. 서로의 일정 확인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동생의 해외 출장 소식, 건강을 잘 안 챙기는 막내에 대한 걱정,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손자들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피곤할 텐데 얼른 집에 가서 쉬어라. 오늘도 수고 했어.”
대부분 통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매일 저녁, 이렇게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한 게 벌써 4년이 되어간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생긴 루틴이다. 장례와 후속 절차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밤, 괜히 어머니가 걱정돼 전화를 드렸고 그게 며칠 이어졌다. 며칠이 몇 주가 됐고, 몇 주가 몇 달이 됐다. 습관처럼 매일 저녁 ‘임 여사님’이라고 저장된 어머니의 번호를 누른 것이 몇 년간 계속될지는 몰랐다.
“바쁘고 힘들 텐데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지만, 전화를 하면 좋아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매일 저녁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비슷한 대화가 또 오간다.
나는 원래 부모님에게 자주 전화를 하거나, 본가를 자주 찾는 살가운 아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아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그것을 전화나 방문으로 확인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특별히 할 얘기도 없이 의례적으로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의 필요를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급작스럽게 이별을 한 후 매일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이런 뒤늦은 깨달음을 상기 시켜주는 카피가 있다. 일본의 통신 서비스 NTT도코모의 포스터 속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話したい」
これ以上の用件はありません。
‘이야기하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은 용건은 없습니다.
20여 년 전, NTT도코모는 <핸드폰 가족 이야기>라는 TV 광고 시리즈를 방영했다. 10여 편으로 이어진 이 시리즈에는 5명의 가족구성원이 나온다. 중년의 부부 그리고 성장한 1남 2녀가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취업, 결혼 등의 이유로 모두 따로 살고 있다. 영상은 막 독립을 시작한 막내딸의 시각에서 바라본 가족들의 평범한 모습이 담겨있다. 연구원인 아빠의 넋두리, 엄마의 요가 수업, 언니의 육아 이야기, 오빠의 회사 생활 등이 그들이 나누는 삶의 단편이다. 이들은 핸드폰을 통해 이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나누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일하고 생활하며 웃고 즐기고, 때론 고민하고 갈등하는 보통의 하루하루다.
이 카피는 TV광고 시리즈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쓰여 있는 문구다. 어떤 이미지도, 미사여구도 없이 카피만 커다랗게 담겨 있는 담백한 포스터다. 이 한 줄은 말해준다. 때로는 통화 자체가 제일 중요한 통화의 목적이라고. 그저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고.
그러고 보면, 정 교수와 임 여사가 나누는 매일 저녁의 통화도 마찬가지다. 늘 똑같은 통화를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통화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소소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시간이다. 변함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는 안심과 행복이 내 일상의 일부를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반복된 통화들이 나에게 알려준다. 특별히 할 얘기가 없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지.
이 평범한 진실을 다른 앵글로 보여주는 문구도 문득 떠오른다.
幸せは、
名もない一日につまっている。
행복은
이름도 없는 하루에 담겨져 있다.
2012년, 생활용품 기업 라이온이 창업 120주년을 맞아 발표한 기업 PR 광고 바디카피의 시작 문장이다.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매일 맞이하는 변함없는 일상에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이어지는 카피에 그 의미를 자세히 담았다.
작은 새소리에 잠에서 깨는 행복.
갓 지은 밥을 씹을 때의 행복,
잘 다녀오라고 가족에게 인사하는 행복.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가.
오늘 저녁에도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임 여사님’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오오~ 정 교수’로 시작해 서로의 똑같은 하루를 확인할 것이다. 변함없이 별 볼 일 없는 이 행복한 시간을 감사히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