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Z(광고계동향) 2024년 5/6월 호
헤드라인이 던진 미끼를 덜컥 물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일본의 대표 꽃미남이었던 배우 겸 가수 기무라 타쿠야(木村 拓哉)가 50대가 되어 아저씨 모습이 됐다는 이야기다. 하아-.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나왔다. ‘이 정도 대스타는 나이를 먹고 아저씨가 된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는구나⋯’ 이런 마음도 짧게 스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짜 내 신경을 건드린 것은 따로 있었다.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 시대의 아이콘. 여성지가 뽑은 <안기고 싶은 남자> 15년 연속 1위의 주인공. 소위 ‘기무타쿠 현상’으로 신생아 작명순위에 ‘타쿠야’를 1위로 올려 놓은 남자. 수식어를 찾는 것만으로도 반나절 이상 걸릴 절세 미남인 그이지만, 시간이 흐른 요즘에는 다른 측면의 기사가 훨씬 많이 눈에 띈다. ‘안타까운 근황’, ‘굴욕’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나오는 이 기사들은, 한 시절을 풍미한 꽃미남의 나이 든 모습을 주목한다.
이런 기사는 기무라 타구야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키아누 리브스 급노화 굴욕’, ‘섹시퀸 이효리 노화 굴욕 어쩌나’ 등 국경과 성별을 넘어 모든 연예인들이 타겟팅 된다. 그런데, 기사에 딸린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굴욕적’인 모습도 아니다. 소위 ‘리즈시절’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멋있는 모습들이다. 어찌보면 40대의 이효리와 50대의 기무라 타쿠야는 전성기와는 다른, 깊이 있는 아름다움과 멋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읽은 다른 기사에는 장수 아이돌 그룹 ‘수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였던 한경에 대한 근황이 소개됐다. 중국에 돌아가 소속사를 욕했다는 배신자 프레임이 작용하는 연예인이라 우호적인 기사가 잘 안 나오는 편이다. 그런 것을 감안해도 조금 너무한다. 40살이 됐는데도 청년 같은 동안을 유지하고 있는 김희철, 이특 같은 옛 동료들에 비해 나이 들어 보이기에 ‘굴욕’이라 것이다. 사진 속 한경은 딱 그 나이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40살이 40살로 보이는 굴욕’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의 반대편에는 젊음에 대한 찬양이 자리잡고 있다. 연예 뉴스나 소셜미디어에는 소위 ‘방부제 미모’에 대한 추앙이 넘친다. 간단한 검색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의 기사가 쏟아진다.
“송OO, 42세 안 믿기는 동안 외모.”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40대의 여배우가 2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언론이 길을 튼다. 그러면 기사는 여기저기 퍼 날라지고 부러움에 찬 코멘트가 줄줄이 달린다. “57세, 김OO 초동안 비법” 다른 기사는 50대의 연예인이 좀처럼 늙지 않는 모습이라고 칭송을 한다. 운동과 식이요법, 그리고 평소의 생활습관을 비결이라며 알려준다. 요즘엔 60-70대 연예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젊음’과 ‘동안’이라는 렌즈로 기사를 쓰고 소비하는 일이 빈번하다.
사람들이 젊고 건강한 외모를 동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면 문제의식을 가질만도 하다. 이제는 연예인들이 많은 돈을 들이고 관리하여 실제 나이보다 20살 이상 어리게 보이는 ‘비정상’을 디폴트값으로 여긴다. 이 정도로 젊음을 찬양하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현상에 우리 광고계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광고 속 연예인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 광고에 비해 덜 자연스러운 편이다. 화장품 광고를 위시한 수많은 광고들이 연예인 모델의 얼굴 위에 티 하나 주름하나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촬영 시의 메이크업과 조명은 물론이며, 후반 작업에서도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여한다.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외국의 사례와는 차이가 난다. 물론, 이러한 비판을 광고계가 전적으로 한몸에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욕망이 광고에 투영되고, 광고업계는 그런 세상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씁쓸한 풍토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카피가 있다. 2014년에 게재된 뷰티 브랜드 카구레 홀리스틱 뷰티(KAGURE Holistic Beauty)의 브랜드 광고 캠페인에 담긴 문구다.
私の年齢は、
私の生きてきた証です。
내 나이는
내가 살아온 증거입니다.
카구레는 브랜드 캠페인으로 여러 편의 포스터를 연재했다. 위 카피는 ‘사실은, 아름다워야할 피부들에게’라는 부제를 가진 캠페인 포스터 중 하나에 담겨있다. 이 캠페인에는 여러 연령대의 여성들이 바닷가에서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메인 비주얼로 표현된다. 이 문장이 담긴 포스터 속에는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이 모델로 등장한다. 세월의 자연스러움이 담긴 웃음에서,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진다. 그런 모습 위에 얹어진 카피이기에 가볍지 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여성의 나이를 감춰주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주는 화장품 브랜드임을 조용히 웅변하는 카피다.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나이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이 녹아있다. 우리가 알게 된 것들과 달라진 시야가 들어 있다. 그것이 진짜로 살아 온 증거이다. 그리고 가치다. 돈과 관리로 매끈해진 얼굴만이 지금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 카피의 미덕은 나이의 가치를 폄하하지도, 부풀리지도 않는 데 있다. 나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으로 독자들을 마주본다.
내가 기대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카피 같은 긍정성과 기대감까지도 아니다. 그저, 기무라 타쿠야와 이효리의 주름 위에서 굴욕이라는 단어를 읽지 않아도 되는 미디어 환경과 우리들의 넉넉한 시각이다. 젊고 건강한 아름다움 못지 않게, 그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아, 그 정도면 대단한건가?
위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 2024년 5/6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