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얼굴
외손녀 도은이가 이제 25개월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소위 여자아이짓을 도은이가 유감없이 보여준다. 눈웃음이야 오빠 도민이도 항상 보여왔지만, 약간 째려보는 듯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흘긴다. 좋아하는 사람(할머니나 할아버지)을 보았을 때 두 팔 벌려 달려와서 웃으며 뽀뽀를 남발하는 모습도 오빠와는 사뭇 다르다. 음악소리가 나면 엉덩이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오빠와는 다르다. 애교 덩어리다.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부모 앞에서 피우는 재롱과 애교로 부모에 대한 효도는 끝난 것이라는 명언(?)을 실감하고 있다. 그 덕에 나도 손주들의 재롱을 한껏 즐기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저렇게 천상의 얼굴로 주변의 모든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해 주는데, 뉴스나 기사를 보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안타깝다.
도은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예쁜 짓도 엄청 하지만 때로는 나쁜 짓도 많이 한다. 오빠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꼭 방해를 한다. 장난감을 갖고 무엇인가를 쌓거나 줄 맞춰 늘어놓으면 어느새 옆에 가서 부수고 망가뜨린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짓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더 하려 한다. 그 표정은 하지 말라는 것은 알지만 난 할 거거든 하는 표정이다. 잘못한 줄 알면서도 잘못했다는 말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 빤히 쳐다본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하라고 윽박질러도 결코 하지 않는다. 오빠를 괴롭히고, 하지 말라는 것을 더 악착같이 하고, 손대지 말라는 것을 더 손대는 도은이의 표정에서 난 인간의 영악함과 이기심을 본다.
식탐 또한 도은이의 트레이드 마크다. 얼마나 악착같이 먹겠다고 덤비는지 커서 뚱뚱해질까 봐 걱정스럽다. 자기 손에 들어온 먹을 것을 양보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스낵과자 중에 '짱구'란 것이 있다. 과자봉지를 뜯어 열 손가락에 과자를 하나씩 끼우고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하나를 먹으면 봉지 안에서 하나를 꺼내 손가락을 다 채우고 있다. 할아버지 하나 달래도 절대 안 준다. 봉지 안에 저렇게 많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과자봉지를 할아버지가 뜯어줬건만...
도은이에게서 호모 사피엔스의 이기심을 본다.
중학교 시절 도덕 시간에 배운 순자의 '성악설'이 떠오른다. 인간의 심성은 원래 악하다는 설 말이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하여 배웠다. 그 이후 항상 인간의 본래 심성이 착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어르신이 되도록 고민했다. 유명한 심리학자도 유튜브에서 인간의 심성이 착한지 악한지는 철학뿐 아니라 심리학에서도 아주 고전적인 명제라고 했다. 그리고 악하거나 선한 것이 아니고 그냥 이기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기적은 결국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행복감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 배부르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당연히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생존가능성의 증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뷔페식당을 좋아한다. 식사 후에 생존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결국 인간의 이기심은 양육과 교육의 과정을 거치면서 순화된다. 덜 드러내는 것이다.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결국은 자신의 생존가능성이 줄어든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힘든 교육이자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다.
음식점에서 뛰어다니면 안 되고,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얌전하게 자기 앞의 접시를 비워야 한다는 것을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힘든 일 없다. 내 딸과 아들이 어릴 때 함께 외식하는 것이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아직은 손주들과 함께 외식을 하는 것이 힘들다. 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만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