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퇴직과 함께 사용하던 방(정식명칭은 연구실)을 비워야 한다.
정년퇴직을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외국영화를 보다 보면 퇴사와 함께 작은 박스 하나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담아 회사 문을 나서는 장면을 본 기억이 생생하게 있다. 사용하던 가구나 컴퓨터가 모두 회사 자산이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가족사진이나 기념품 정도가 본인 소유다. 결국 그런 물건들은 작은 박스 하나에 넣어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교수는 보통 7평 남짓한 공간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가구들을 구입 배치하고 컴퓨터를 비롯한 작업공간과 많은 책과 자료들을 소유하고 있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교내외 봉사하는 것이 교수의 직무다. 참 다양한 일이다 보니 다양한 책, 보고서와 자료가 엄청 많다.
내 방에는 70년대 후반 내가 대학 다닐 때 강의 들으며 필기한 강의노트까지 있다.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간격이 좁은 줄이 빽빽이 쳐진 대학노트에 직접 필기한 것 말이다. 70년대 말의 강의노트를 왜 이제껏 갖고 있었을까? 추억을 간직하려고? 아니다. 혹시라도 내가 그 과목을 가르치게 되는 상황이 생겨 강의준비를 하려면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수십 년 전에 수강하며 작성한 노트라도 다시 보면 옛날의 깨우침이 다시 살아날까 하는 마음에서다.
석사과정 때부터 일정이 정리되는 비즈니스 캘린더 노트를 사용했다. 매년 신년이 되기 전에 마련하여 일정들을 정리하며 꼭 일 년을 항상 끼고 다녔다. 그 당시 무엇을 했는지는 별 관심 없는데, 캘린더 노트의 뒤에 첨부되는 백지노트에 낙서 삼아 쓴 글과 일기 편지 등이 있다. 일 년에 한 권씩이니 수십 권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내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의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 답안지와 출석부를 얼마동안 보관하는지 아시나요?
3년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육부 감사를 위해 3년 보관이 교수의 의무다. 3년이 지난 답안지는 쇄절 해서 파기해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쌓인 답안지와 출석부가 어마무시하다.
정리하다 보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나왔다. 기억을 더듬으니 1996년 교수를 지원할 당시 제출서류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있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니 고등학교 3년 내내 장래희망이 교수였다. 부모의 희망도 마찬가지다. 이제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연구실을 비우니 장래희망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담임선생이 학생을 평가하는 칸에 고집이 세다는 표현이 남아있다. 보통은 성실하고 적응 잘하고 있다고 쓰는 것이 보통인데 내가 유별나긴 했나 보다.
시원섭섭하지 않다. 시원할 뿐이다. 젊을 때는 강의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정년이 가까워오면서 강의도 일종의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젊은 학생들과 교감이 가능한 시절에는 재미뿐 아니라 보람도 있지만, 연로한 교수가 되면서 학생들과의 교감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은 명예교수가 되고도 한두 과목을 강의하는 것이 보통인데 더 이상 강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르신의 건강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난다.
이제는 28년간 근무한 학교를 다시 찾을 일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