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방랑길을 떠나기 전 마지막에 하는 것은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다. 노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숙소 예약 앱은 참 많다. 그 많은 앱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내가 최근에 자주 애용하는 앱은 Agoda였다. 강렬한 코발트색에 매료되어 부킹닷컴을 사용하다가 아고다의 무지개색 다트에 꼬여 아고다로 넘어갔다.
한동안 아고다를 잘 사용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고다가 나를 짜증 나게 한다. 짜증 나게 하는 사람은 손절해야 한다. 사람은 참 안 변한다. 아무리 수정하려고 잔소리와 심지어 협박을 해도 안 변한다.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짜증이 난다면 짜증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잘 사용하던 앱이 짜증을 일으킨다면 앱을 지우고 다른 앱을 사용하면 된다.
아고다가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이유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Cashback이다. 캐시백이 왜 생겼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아고다의 캐시백은 숙박을 하고, 숙박업소에서 숙박했음을 확인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나 캐시백 가능 알림이 오면 아고다에 들어가 캐시백 신청을 해야 한다. 캐시백 신청이 클릭 한 번이라면 하겠는데, 은행으로 할 것이냐? 신용카드로 할 것이냐를 선택하게 하고, 달러로 할 것이냐? 원화로 할 것이냐를 또 선택하게 하고, 심지어 내 주소를 영어로 매 번 작성하게 한다. 10불 내외의 돈을 돌려받겠다고 영어로 한국주소를 처넣으면서 짜증이 난다. 내 신용카드 정보를 이미 갖고 있어 예약할 때는 원 클릭으로 돈을 빼가면서, 캐시백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했는지 심증은 간다.
그래서 다시 부킹닷컴으로 돌아왔는데 부킹닷컴도 유사한 기능이 만들어졌다고 안내 알림이 뜬다.
부킹닷컴은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시작된 서비스고, 아고다는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서비스라고 한다.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미국의 프라이스라인 그룹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짜증 나서 옮겨봐야 거기서 거기란 얘기다. 짜증이 배가되는 것 같다.
은퇴하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어 이마트나 동네 슈퍼를 예전보다 자주 방문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러 간다. 간단한 장을 보고 계산대에 서면 꼭 포인트 적립을 묻는다. 안 하기도 뭐해서 아내의 전화번호를 찍어 넣는다. 그러면서 짜증이 난다. 얼마나 포인트가 쌓인다고 이 짓을 하나 하고...
아침식사로 항상 토스트를 먹는다. 식빵이 집에 떨어지면 안 된다는 얘기다. 파리바케트나 툴레주르를 가리지 않는데, T membership 바코드를 계산 전에 읽히면 몇 백 원인가 할인해 준다. 그렇지만 멤버십 바코드를 보이려면 아이폰의 앱을 열고, 한 번 더 클릭해야 한다. 이 과정도 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이즈음 그냥 계산해 달라고 한다.
마일리지니 포인트니 하는 것들이 나를 짜증 나게 한다.
실제 돈으로 환산하면 푼돈조차 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계산대에서 내 귀중한 인생을 버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나는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티끌을 모을 만큼 인생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짜증이 자주 나는 이유는 건강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