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사랑하는 아주 젊은 뮤지션이 쓴 책에서 읽었다.
‘지금 나이가 30인데 만약 100살까지 살아 앞으로 70년을 산다 해도 피아노만 있다면 전혀 외롭지 않을 자신 있다고...’ 그만큼 피아노를 사랑한다는 얘기다. 음악을 사랑하는데 자신과 음악을 연결하는 것이 피아노라 피아노만 있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젊은 뮤지션은 ‘Secret’ 이란 영화의 피아노 배틀 장면을 보고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 나도 그 영화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났다. 피아노 배틀 장면이 인상적이라 나도 좋았다. 찾아보니 드물게 성공한 대만 영화다.
귀가 예민해야 뮤지션이 될 수 있다. 절대음감이니 상대음감 같은 능력을 타고나야 한다. 귀가 좋아야 음악을 좋아할 수 있다. 청음 능력이 노력만으로 크게 될 수 없다.
엄마가 국민학교 2학년 가을부터 나를 피아노 교습소에 보내기 시작했다. 하논과 체르니를 치기 시작했다. 정말 지겨운 일종의 노동이었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감기 걸린 것 같다고 온갖 핑계를 대며 연습과 교습을 빼먹을 궁리만 하던 내가 보인다. 그렇게 강요하던 엄마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새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피아노 교습을 계속 받겠다고 했다. 사춘기 시절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 계속 교습받으면 잘 칠 줄 알았다. 아마 대학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까지 배웠던 것 같다. 그러다 포기했다. 기억력과 암기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데 피아노 악보는 외워지질 않는다. 그때 알았다. 내가 청음이 안 된다는 사실을…
소리의 예민한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를 잘 다룰 수 있다. 내 청각의 예민함이 둔하다. 그래서 딱히 좋아하는 음악이 없다. 음악을 틀어 놓고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 음악이 내 집중을 방해한다. 노래방이 발명되기 전에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외국을 방랑하다 그 나라의 언어가 잘 들리면 모든 면에서 좋다. 현지 언어를 조금만 구사해도 현지인들의 대우가 달라진다. 그런데 청음이 둔하니 언어를 익히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영어보다 수학과 과학을 잘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오래 사용할 수밖에 없던 영어와 제법 쓸만한 눈치로 외국 방랑을 버티고 있다. 상황파악이 잘 안 되는 애매모호함은 언어가 문제라기보다는 처한 상황의 맥락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맥락을 모르니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같거나 유사한 두 번째 경험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눈빛과 약간의 몸짓만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다. 세 번째라면 일상이나 습관처럼 행동할 수 있다. 방랑도 습관이 될 수 있다. 방랑도 일상처럼 할 수 있다.
어르신은 결국 청각장애가 온다.
노인성 난청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청각 능력이 점차 손실되는 현상을 뜻한다. 남성의 경우 25세부터, 여성의 경우 30세부터 청각 능력 손실이 일어날 수 있다. 유전적 원인뿐만 아니라 소음, 독극물이나 병원체에 노출됨에 따라서도 청력 손실이 시작되는 시기가 다양해질 수 있다. 노인에게서 고혈압, 당뇨, 귀에 해로운 일부 약물의 사용은 청각 장애의 위험률을 증가시키는 일반적인 원인이다. 모든 사람들이 노화에 따라 청각을 잃어가지만 그 정도와 유형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위키백과]
노인성 난청은 노화에 따른 청각기관의 퇴행성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점진적인 청력감소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노인성 난청의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기도 청력역치를 6분법을 이용하여 65세 이상 인구에서 37.8%가 노인성 난청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노인성 난청은 일반적으로 내이나 청신경에 장애가 생길 경우에 초래되며, 보통 양쪽 귀에 동일하게 생기고, 대개 높은 음이 잘 안 들리고 낮은 음은 들을 수 있고, 감각신경성 청력 장애로 나타난다. 종종 전도성 청력 장애로 노인성 난청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도성 청력 장애란 외이나 중이에 이상이 있어 소리가 내이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남자는 25세부터 노화가 시작되어 65세 이상 인구의 거의 40%가 난청을 가지고 있다.
나도 보청기를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 보청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어르신은 불편해한다. 손톱보다 작은 배터리 교환도 쉽지 않고, 보청기를 간수하는 것도 일이다. 무엇인가를 읽어야 할 때마다 안경을 찾듯이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할 때마다 보청기를 챙겨야 한다. 쉬운 일 아니다. 엄청 번거롭고 슬픈 일이다.
대화를 포기하면 된다. 혼자 잘 지내면 된다. 방랑을 일상으로 만들면 된다.
https://youtu.be/G-FdX1D5hVg?si=dW4UM4dvKFtwBM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