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마 지금쯤 수험장에 앉아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겠죠? 수능을 잘보고 싶은 마음, 당연합니다. 10대 시절 내내, 입시 스트레스 받으며 좋은 대학가야 성공한다는 사회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을테니까요. 저도 그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동안 준비한 실력만큼 큰 실수없이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험이 끝나고나면 모든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릴겁니다. 이제 그 시험성적으로 각자 점수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게 될테니까요. 요즘도 대학 배치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수대에 맞춰 갈 수 있는 예상 대학과 학과가 주욱 나열되어있는 표말입니다. 이 배치표 상단에 있는 학교를 가느냐, 아니면 아랫쪽에 있는 학교를 가느냐, 그동안 인생 전부를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잔인하게도 한 번의 시험과 이 배치표에 찍혀있는 점수와 학교로 평가받게 되겠죠.
그런데 여기서 수능이라는 시험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능시험은 무엇인가요? 수능은 대학 입학 시험 입니다 대학 입학 시험은 무엇인가요?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의 학습역량이, 대학이 요구하는 수준에 적합한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적합성을 파악하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이런 시험 제도와 틀에 박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이런 규칙과 시험이 적성에 잘 부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능은 수험생들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능력 시험>이 아니라, 학생들간의 적성을 파악하는 <적성 시험>입니다. 다시 말해, 시험을 본 수험생들간의 우열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이야기 입니다. 수능 시험을 잘봐서 좋은 대학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그런 제도와 시험이 적성에 맞는다는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수능 시험을 망쳐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것은 수능이라는 제도와 시험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어쩌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좋은 학교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수능시험을 잘 봤든, 그렇지 않든, 좋은 학교를 가든, 그렇지않든 그리 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는 수험생들, 그동안 정말 노력 많이했고 고생했습니다. 그 좁은 문을 뚫고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될 수험생 분들에게 미리 축하의 말 전합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한거예요. 자기 자신을 맘껏 칭찬해도 좋을 일 입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시험을 잘봐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월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적합했을 뿐이예요. 그래서 좋은 대학교에 갔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되, 이 기쁨이 우열의 감정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인내와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었음을 자축하는 기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좋은 대학교에 입학 했다는 것은 자격이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모든 자격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수능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 입니다. 대학이라는 제도와 틀 안에서 공부하기에 좀 더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이 합의와 규칙을 따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사회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자칫, 자격이라는 것이 자기 스스로가 잘해서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자격에 대한 '적합성'은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지만, 자격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따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 수험생들은 자신의 기회를 사회적 합의와 규칙에 따라 양도한 것 입니다. 이는 자신보다 여러분이 그 역할을 더 잘 수행할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따른 것 입니다. 여러분들의 자격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규칙을 따른 것이죠. 한마디로 좋은 대학교를 가는 순간, 사회적 빚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프랑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근간이 되는 정신입니다.
이제 원하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될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공부에는 사회적 책무가 뒤따릅니다. 이것이 비단 개인의 욕망과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욕망하는 이익에도 봉사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누군가는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누군가는 안전을 책임지고, 누군가는 열심히 빵을 굽습니다.
여러분이 눈부신 성취를 이룰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룬 성취와 업적의 가치가 차상위 계층, 최소 수혜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와 의무를 다해주길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열과 특권을 공정과 상식으로 여기는 기성세대, 그리고 통탄할 이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여러분들이 변신 시켜줄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또 하나,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한 수험생 여러분, 괜찮습니다. 그저 실수했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또한 배움입니다. 배움의 본질은 경험입니다. 그리고 모든 경험이 유쾌할 순 없습니다. 반성할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성찰하면 될 일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한다면 끝까지 해내는 투지를 배우는 것이고,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 줄 것입니다. 장담컨데 여러분은 10년 후, 오늘의 배움을 미소로 회답하게 될 것 입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소위 대학이 적성에 맞지않는 여러분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대학이라는 곳이 적성과 취향에 지독하게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럽습니다. 지금은 그저 가까운 미래에 '새옹지마'라는 말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충돌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의기소침할 필요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진 것도 아닙니다. 규칙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규칙이 존재하는 곳으로 장소를 옮기면 됩니다. 어쩌면 그곳에 가지 않는 선택이 더 현명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시험을 잘봤다고 그리 좋아할 필요 없습니다.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지게 됐으니까요.
시험을 못봤다고 그리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기회가 열렸으니까요.
수험생 여러분, 그동안 정말 애썼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른들 말 듣지말고, 각자의 방식에 따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_ ㄱㅁ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