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보러 가다

2019.09.11 강릉

by Lacedie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고 있다. 어느 날 편지에서 발신인은 바다에 갔다. 바다와 모래사장의 사랑을 담은 문장을 편지에서 읽었다. 따뜻한 답장이 오고 갔고, 아직 나란 사람은 사소한 것으로도, 사람으로도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 있구나, 생각했다.



바다가 왜 그리도 보고 싶었을까. 지난날에 읽은 편지 때문일까?

우연히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덩그러니 생겼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밤에 충동적으로 강릉행 기차를 끊었다. 동행도 없이 목적과 계획도 없이. 하나의 목적이라면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바다가 보고 싶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강릉을 자주 찾아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다가 보고 싶어서 강릉을 가기로 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떠나는 여행은 멋이 난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애인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머나먼 길과 바다를 건너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나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바다를 향해 훌쩍 자주 떠나는 사람이다.

바다를 보고 나니 왜 오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무언가에 의해서 끌려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파도의 마음은 무엇일까? 끝없이 닿으려고 부딪히고, 끌어당기는 것에 의해서 끌려가도 다시 부딪히는 것은... 내가 그 마음을 아는가? 난 모르는데 왜 나는 이러한 반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나.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래 때문에 흙색과 바다색의 물이 함께 파도로 만들어지고, 모래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파도와 그 옆 파도가 상쇄되는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은 처음 포착한 그림이었다.



수많은 반복과 그 안엔 수없이 다른 파도들. 파도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매번 만들어지는 파도는 매번 다른 파도였다. 바다는 그렇다. 늘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그 공간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 느끼는지 사실 바다 앞에 서면 다 까먹어버린다. 없어져버린다. 그냥 파도가 치고 있고 내 앞에는 커다란 바다가 있을 뿐이다. 닿을까 하다가도 닿지 못한 파도들. 너를 무엇이라 말하며 무엇을 보고 느꼈다고 말할 수 있나.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를 사로잡는지 모르는 채 계속 같으면서 다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답을 나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왜냐면 내가 이유를 결정 지을 마음이 없었으니까. 정리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나와 바다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순간들이 흘러갔다. 저렇게 세찬 파도라면 날 한 입에 집어삼켜 두려운 순간도 없이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격자는 없었다. 파도는 나를 사라지게 하면서 외롭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히 시야를 고정시키고 싶은 아프도록 사랑하는 풍경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어둑해지는 시간에 오지 않은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님은 혼자 탄 내게 "혼자 왔냐", "밥은 먹었냐"라고 물었다. 바다에 혼자 온 사람들을 태운 이야기를 했다. 한 언니는 이른 오후부터 밥도 먹지 않고 술을 먹었다고 했다고 했다. 어떤 아픔으로 아침부터 술을 먹었을까? 밥도 먹지 않고.

택시 안 할아버지가 모든 슬픔이나 아픔일랑 다 동해바다에 버려두고 가라 했다. 자기들이 책임진다고. 웃음이 나왔지만 더없이 따뜻한 말이었다. 나는 무엇을 두고 왔을까? 나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리고 바다를 만난 사람들이 동해에 슬픔과 아픔을 두고 오면, 동해 바다는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을 안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너는 그토록 모든 파도마다 아픔을 드러내는 것일까? 나는 그 풍경에 목이 메었다. 눈이 박혔다. 나는 바다를 안아줄 만큼 큰 가슴을 가지고 있지 않다. 파도는 계속 홀로 울었고 나는 그 바다에 손 한번 내밀어 주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이 아름다운 또 어느 날의 하루였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위와 같은 글들을 훔쳐 쓰듯이 썼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데 모래에 털썩 주저앉지도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나를 생각할까 봐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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