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일단 써 내려가기만 해도 되는데...
2010년 10월 23일 20시 드디어 800여 KM의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ostela
성당 앞 광장에 섰다. 이미 해가 져서 성당의 실루엣만이 어두워진 하늘에 어슴프레 보였던 5년 전의 그 저녁, 길의 끝에서 굉장한 보물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걸어갔더랬는데, 길의 끝에 섰을 때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 없이 단지 얼른 신발을 벗어던지고 앉아서 쉬고 싶었다. 싼띠아고로 갔던 길을 돌이켜보면 걷는 내내 하루하루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시작, 걷고 또 걷고, 도착, 감흥보다는 휴식. 맛있는 음식과 술은 덤!
나는 싼띠아고 가는 길 (이하 "까미노")을 걷는 동안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NACHO라 불렸다. NACHO가 걸었던 까미노에서 난 유일한 한국사람이었다. 처음 까미노를 계획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여행으로서의 까미노와 순례길로서의 까미노에 대해. 그러나 사실 계획했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왜냐하면 '가서 걷자'라는 계획만 있을 뿐 준비물이나 여정에 대한 계획은 전무했었다. 계획 중 하나는 까미노를 걸으면서 매일 기록을 하고 까미노를 끝내고 돌아가서 책을 내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나중에 내 책에 한 마디씩 써야 하니 준비를 하라고 설레발까지 쳤다. 그런데, 이미 2015년이 저물어 가는 11월의 첫날이 되어버렸다.
까미노는 일단 길다. 시간이나 거리 모두. 그래서 시작할 엄두도 잘 나지 않지만, 막상 시작해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까미노에서 돌아온 지 5년이 훌쩍 지나도록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은 '아! 얼른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였다.
까미노를 걷는 것도, 까미노를 다녀온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일단 시작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NACHO의 싼띠아고 갔던 길을 일단 시작한다.
※ 2016년 6월 23일 내용 일부 수정함.
일단 써 내려가기만 해도 된다고 써놓고 또 7개월을 손놓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