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의 <페니키안 스킴> 리뷰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한동안 눈이 먼저 포만감을 느낀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그 파스텔빛 대칭 구도는 거의 미식(味食)에 가까웠다. “색으로 배부르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언젠가 다시 그런 미적 과식을 하고 싶다고, 반쯤은 중독처럼 생각해 왔다. 그래서 새 영화 <페니키안 스킴> 예매 버튼을 누르는 건, 사실 망설임보다는 충동에 가까웠다.
시놉시스
괴짜 거물 사업가 코다가 ‘페니키안 스킴’이라는 초대형 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다가, 리벳 시세 조작과 암살 미수에 휘말린다. 그는 6년 만에 재회한 스무 살 딸 리즐을 상속자로 앞세워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둘은 후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로드무비 겸 첩보 코미디 여정에 오른다.
첫 장면부터 충동은 보상을 받았다. 미술관처럼 정갈한 객실—크림색 가죽 시트에 선홍색 파이핑이 대칭을 이루고, 체크 커튼이 달린 창문 사이로 황톳빛 램프가 부드럽게 번진다. 천장은 벌집처럼 모여든 패널로 이어지고, 통로 끝엔 빈티지 가방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짧은 장면에 숨이 멎는다는 표현이 낯간지럽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아름다운 비행기는 폭발했고 화면은 징그러울 만큼 ‘앤더슨식 첩보물’로 돌변했다. 그래, 이건 웨스 앤더슨이 하는 농담이겠지. 관객 대부분이 같은 걸 직감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통쾌했던 건 톰 행크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스칼렛 요한슨 같은 초거물급 배우들이 ‘웨스 앤더슨 전용 모형’처럼 노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입체적인 개성을 살짝 접어 두고, 파스텔 팔레트 속에서 ‘화면 속 피겨’로 변신한다. 대사는 박자 맞춘 랩처럼 또박또박, 표정은 꼭두각시처럼 한 박자씩 뒤로 밀려 나와 스타 파워가 앤더슨스러움에 몸을 맞춰 낄낄거릴 만한 즐거움을 만든다. 덕분에 관객은 “저 얼굴들이 저렇게까지 평면적으로 놀 줄이야!” 하고 두 번 웃는다. 한 번은 인지도 때문에, 한 번은 그 인지도가 기꺼이 장난감이 되는 순간 때문에.
그러나 지나치게 예쁜 소품들이 이야기를 자꾸 멈춰 세웠다. 초록 구슬이 박힌 루비 십자가 묵주, 이집트 문양 카펫 위에 장기판처럼 늘어선 슈박스 세트, 욕실 바닥을 바둑판처럼 메운 다이아 패턴 타일까지—눈은 온통 거기에 붙들렸고, 대사는 스쳐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스크린 위에는 플롯이 아니라 ‘미장센 박람회’가 열리는 듯했다. “지금 내가 보는 건 이야기인가, 장식인가?”—어쩌면 이 혼란 자체가 감독이 심어 둔 덫일지도 모르겠지만.
엔딩은 묘하게 <라따뚜이> 같았다. 수차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코다가 마지막엔 딸 리즐과 나란히 작은 식당의 문을 연다. 그 따뜻한 풍경이 감동스러우면서도, 곧 “사람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녀의 힘이 정말 이렇게 세게 작용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뒤따랐다. 어쩌면 죽음 가까이에서 여러 번 돌아온 경험이 코다를 바꿔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극장을 나서며, 소품 퍼레이드 속에서 놓친 단서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 져 재관람 버튼을 슬쩍 떠올렸다면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