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타다시피 했던 지하철은 종종 만원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그냥 지나갔다. 사람들은 대체로 바빠 보였고, 나 또한 그랬다. 하루에 2시간씩 등하교와 출퇴근을 도대체 어떻게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매일 바쁘게 바쁘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 종일 밖에 있다 온 날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채용공고 하나를 보았다. 한 번도 안 가본 스위스에 있는 포지션이었고, 보는 순간 지원해야겠다 생각했다. 일단 지원해서 합격하면 그때 다시 고민해보기로 하면서.
이제 스위스에 온 지 2년 가까이 되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여러모로 만족스럽지만, 그중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어쩌면 나의 간절한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곳을 나의 마음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둔 채 보내는 고요한 시간.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는 내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시간 자체가 나에겐 재충전의 기회다.
시간을 내서 호숫가나 공원에서 혼자 산책하며 예쁜 풍경을 눈과 사진에 담는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몇 시간이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어떤 날은 소파에 늘어져서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서툰 미씽 실력으로 옷 수선도 해본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기차를 타고 새로운 도시 탐방을 한다. 외식도 혼자 하고, 영화도 혼자 보러 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도 한 권씩 읽어본다. 그리고 크고 작은 계획들을 세워본다. 특히 그동안 '로망'이라는 단어에 머물렀던 것들을 실행할 계획 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스위스에는 참 아름다운 곳이 많고, 계절마다 할 수 있는 활동도 다양하다. 하지만 여기 와 있는 한국인 혹은 외국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곳에서 외롭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도시일수록 그러한 것 같다. 나 또한 지난 2년간 수많은 친구 및 지인들을 다른 나라로 떠나보냈다. 이 곳에 혈혈단신 와 있는 나도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특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엔 한국과 미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해 서글프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내게 주는 보상은 크고 필수적이다. 나만의 시간은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냥 나일 수 있는 시간이다.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시간, 미처 몰랐던 나의 바람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전보다 나만의 시간이 많아진 만큼 느끼는 행복감도 더 커졌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나만의 시간을 내게 선물로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환경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스위스에 와서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나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스위스 생활을 통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