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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likehuh Jul 11. 2021

이상은 모래와 같고 현실은 돌과 같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속에 나는 무엇을 택해야 하나

 이상은 모래와 같다. 움켜쥐려 할수록 손 틈새를 빠져나간다. 아마 다시 손을 펴보면 원래 쥐었던 모래는 온데간데없고 부스러기들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현실은 거친 돌과 같다. 내 손 위에 둔탁하게 턱 하고 놓이면 한동안은 들고 있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손이 점점 아려온다. 힘이 빠지자 더욱 무거워진다.


 모래가 주는 부드러운 감촉은 매력적이다. 이리저리 주무르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내가 상상했던 완벽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새 없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완성되지 않는 작품을 붙잡고 평생을 분투하는 것이다.


 돌은 굳건하다. 내가 움켜쥐고 싶어 손에 힘을 주어도 그저 위에서 내 손을 짓누르고 있을 뿐 어느 모서리 하나 내 마음대로 다듬어지지 않는다. 양손으로 힘껏 쥐어도 그대로다. 난 그저 들고 버틸 뿐이다. 그러다 보면 그 모습이 눈에 익어 모난 것들이 더 이상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된다. 아니 그렇게 익숙해지길 바랄 뿐이다. 모나 보였던 돌이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수석처럼 보이는 것은 돌이 변한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변할 때니까.



그렇다면 나는 부드러운 모래를 택해야 하는 것일까, 거친 돌을 택해야 하는 것일까. 빈손을 편채 생각에 잠긴다.


 펴진 손바닥이 고민하는 사이 누군가 돌을 얹어준다. 내가 달라하지 않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며 쌩판 모르는 돌을 얹어준다. 내가 받은 돌은 못생겼다. 옆 사람이 받은 돌은 둥글고 이뻐 보이던데. 다시 내 돌을 본다. 눈이 아리다. 이쁘게 만들어보려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눌러본다. 들고 있는 손이 아리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돈을 들고 있으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내려놓고 싶다. 팔이 떨린다. 평생 들고 있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돌을 주고 간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살기 위해 그 돌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한 손에 들어옴직한 모래를 펐다. 내 의지로 푼 모래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끔한 구를 만들어보려고 애를 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비가 오면 모래가 축축해지면서 내가 원하던 부드럽고 둥근 모양으로 굳는다. 수분이 날아가도 그 모양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바람이 살짝 불면, 내 손이 잠시 떨리면 뭉쳐져 있던 모래알들이 부스스 떨어진다. 나는 다시 비가 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하늘을 쳐다봐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렵게 만든 모래공이 부서질까 염려하며 모래공 한번, 하늘 한 번을 쳐다본다. 그러다 바람이 훅 분다. 모래공이 힘없이 부서진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 못한 나를 자책하다가 바람을 보낸 하늘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리고는 다시 비를 기다린다. 무너진 모래를 들고 있는 나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비를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옆 사람은 아직도 이쁜 돌을 들고 있다. 무거워 보이긴 하지만 내 손바닥에 얼마 남지 않은 모래보다는 낫다 싶다. 결심을 한다. 모래를 놓아주고 돌을 다시 들어보았다. 두둑해진 손바닥에 든든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나도 무언가 들고 있다는 마음에 초조함도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돌을 쳐다보고 싶지는 않다. 내 돌은 못생겼으니까. 내 눈은 옆사람이 들고 있는 이쁜 돌을 쳐다본다. 내 손과 팔에 전해지는 무게를 느끼며 저것이 내 돌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한동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점점 팔이 저리고 손이 아려와 내 손을 쳐다보니 못생긴 돌이 멀뚱히 앉아있다. 쳐다보기 싫어 눈을 감아도 돌은 아직 내 손위에 있다며 손바닥에 신호를 보낸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내가 이쁘게 만들었던 모래공이 아른아른거린다. 부드러웠던 감촉과 아름다웠던 모양새가 그립다. 눈을 감았는데도 그 모양이 강렬하게 눈앞에 꽂힌다. 손이 아려 다시 눈을 뜨니 내 모난 돌이 손바닥 위에 앉아있다. 잠시 머릿속에서 보았던 둥근 모래 공의 잔상이 그 위에 겹쳐 보인다. 이내 사라진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조금 더 필사적으로 모래공을 상상한다. 다시 눈을 뜨면 모래공이 한번 더 모난 돌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잔상이 더 강렬해지자 내 모난 돌 속에 숨은 아름다운 둥근돌이 눈앞에 일렁인다.


 모난 돌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바닥에도 내리친다. 손에서 피가 나고 팔이 저리다. 부스러기가 떨어지긴 하지만 좀처럼 모양이 변하진 않는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다 모난 돌을 들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모난 돌 속의 둥근 공을 보았냐 물어본다. 자신도 보았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우리는 서로의 돌을 내리치면서 돌을 깎아나간다. 역시 손이 아프다. 팔도 저리다. 그래도 점점 둥글어지는 돌을 보며 아픔을 잊는다. 틈틈이 눈을 감아 아름다웠던 둥근 공의 잔상을 불러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우리의 돌은 둥글어졌다. 모난 부분이 모두 깎여나갔다. 처음에 상상했던 모습보다는 크기가 작아진 것 같지만 이쁜 공을 보며 만족한다. 부드러운 감촉과 아름다운 모습이 뿌듯하다. 부드럽던 내 손은 굳은살이 박이고 흉터가 가득해졌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내 손에 이쁜 돌이 올려져 있으니까.


 어느새 보니 내 주변에 고운 돌가루가 가득 쌓여있다. 모아놓고 보니 마치 모래 같다. 아니 모래다. 다시 만져보아도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다. 하지만 이내 발로 쓱 쓸어버린다. 나에겐 모래가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나는 내 돌이 좋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본다.


 잠시 눈을 돌려 옆사람을 쳐다본다. 옆사람은 아직도 아름다운 둥근돌을 들고 있다. 손이 참 곱다. 나는 다시는 옆사람을 보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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