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likehuh Dec 16. 2021

한국 음악산업은 왜 항상 Follower인가

미국의 것이 무조건 BEST인 걸까?

#방송미디어콘텐츠와이용자_기말레포트


 음악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트렌드 변화가 매우 빠른 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이 직접 새로운 음악을 경험하거나 레코드 판을 들고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해외 음악 시장의(주로 미국과 일본) 트렌드가 우리나라에 수입되기까지 길게는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트리밍 플랫폼,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음원을 발매하고 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트렌드를 확인하기까지는 딜레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를 ‘확인하기 까지’는 딜레이가 거의 없다고 콕 집어 말한 만큼 이것이 국내 음악시장에 실제로 ‘반영되기’까지는 아직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분명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의 트렌드를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왜 국내 음악 시장은 한 템포 늦게 트렌드를 따라가게 되는 걸까? 본 글에서는 짧게나마 음악 산업을 경험하면서 느낀 몇 가지 이유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국내 음악시장은 싫으나 좋으나 오랫동안 ‘Follower’의 입장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트렌드를 주도하는 시장보다는 물리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항상 늦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일본의 음악 시장을, 현재는 주로 미국의 음악시장을 레퍼런스로 여러 음악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미 해당 시장에서 발매된 음악을 레퍼런스를 잡고 국내에서 음악 제작을 시작하면 아무리 한국이 ‘빨리빨리’ 문화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곡을 수급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음원을 발매하기 까지는 일정량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내 시장에서 해외 시장의 트렌드를 빨리 캐치하더라도 꼭 한 템포 늦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갭을 좁히기 위해서는 해외 음악시장의 생산자들과 제작 단계에서부터 함께 음악을 제작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꽤나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영역이다.


세계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 글로벌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항상 Follower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걸까? 혹자는 우리나라의 음악이 해외시장의 음악보다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에 우수한 해외 시장을 따라가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도 최근 들어 어느 정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나가고 있기도 하거니와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의 생활과 함께해온 음악 문화를 해외의 기준에 빗대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것은 음악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발생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릇과 같기 때문에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거나 떨어진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국내 음악시장이 오랜 시간 해외 시장의 Follower였던 이유는 국내 음악시장의 규모가 음악시장을 주도하는 해외 시장보다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여러 산업도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국내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이후 더 이상 음원 판매와 공연 수익만으로 자급자족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과 같은 초대형 시장에서 쏟아지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음악 콘텐츠들을 국내에서도 손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중들은 더 많은 자본이 들어간, 퀄리티 높은 음악 콘텐츠를 요구하지만 국내 음악산업은 실력이 있더라도 내수시장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 음악시장은 항상 내수보다 더 큰 시장(과거 일본, 현재 미국)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 국내 음악의 퀄리티가 해외 음악보다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서술하였지만 이는 음악성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POP 음악 시장만을 놓고 보았을 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 퀄리티의 차이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역시 자본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돈이 모이는 미국 시장에는 돈과 함께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다. 당연한 얘기지만 돈도 많고 사람도 많은 미국에는 자연스럽게 최고의 퀄리티로 제작된 음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만큼 자본에 여유가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실험을 하기보다는 실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레퍼런스가 중요한, 성공모델을 따라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결국 내수시장이 탄탄하지 못해 음악을 수출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 적은 돈으로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우리를 Fast Follower가 되게끔 부추긴 것이다. 


전 세계 음악시장 규모(2019) : 한국은 무려 6위지만 미국과는 11배 이상 차이 난다. 


 두 번째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과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는 꽤나 큰 갭이 있다.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야 매일같이 음악을 듣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며 치열하게 음악을 소비하지만 대중들에게 음악은 여유를 즐기게 도와주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 가지 여흥 거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트렌드에 민감한 소수의 대중 이외에는 그저 내 귀에 좋게 들리는, 내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면 모두가 좋은 음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 산업에서 아무리 새로운 트렌드라 하더라도 이전의 트렌드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음악을 발매할 수 없다. 180도 변화하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대중들에게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하나의 큰 트렌드가 변화할 때는 항상 그 사이에 교집합이 되는, 과도기에 맞는 음악들이 존재해왔다. 대중들이 ‘이 곡은 정말 새로운데!’라고 느낄지라도 일정 부분은 이전의 것을 녹여낸 곡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받아들여졌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음악시장은 대부분의 경우 점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국내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들고 오더라도 대중이 받아들이는 트렌드로 자리잡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모된다. 대부분의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트렌드를 바로바로 수입하거나 이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곡보다는 한 템포 늦은 안전한 음악들을 발매하기를 선호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내가 전 세계 음악 트렌드를 이끌어갈 만한 선구안을 갖고 국내에 매우 퀄리티 높은 음악을 발매하더라도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상이거나 훗날 받는 ‘재평가 상’ 정도일 거다.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려면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 돈이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의 우수함에는 큰 관심이 없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딘가 암울한 글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국내 음악시장도 최근 하나의 큰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K-POP의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자본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이전에 우리나라가 가질 수 없었던 유통망, 팬덤(관심), 기술, 자본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이 충족되었으니 우리나라도 K-POP이 아닌 POP 시장을 노려볼 수 있는 입장권을 손에 살짝 쥔 셈이다. 그리고 BTS의 성공 이후 우리나라 대중들의 해외 POP 시장에 대한 관심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5년 전만 해도 한국 음악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멜론 차트 상위권에 POP 음악이 랭크되는 일은 대서특필 할 일이었지만 요즘엔 저스틴 비버나 콜드 플레이의 곡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를 Follower로 만든 두 가지 이유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제부터는 국내 음악산업도 무조건 레퍼런스를 따라가기보다 우리만의 정서가 녹아있는 우리의 음악을 더욱 연구하여 POP 시장의 트렌드와 재빠르게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K-POP의 유행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Next K-POP을 제시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시장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Rock 음악이 어느 순간 빌보드 차트에서 종적을 감췄던 것처럼 대중들은 언제든지 더욱 재미난 것이 등장하면 K-POP에서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있다. 앞으로 K-POP도 ‘이게 로큰롤이지!’라며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Rock보다 뿌리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그 형태를 변화시켜온 힙합처럼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발전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들도 좀 더 음악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유행하는 음악,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보다는 내 마음을 울리는 음악, 내 취향의 음악이 무엇인지 좀 더 탐구해보면서 음악을 인생의 벗 삼아 함께한다면 분명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맛집 투어를 다니듯이 새로운 음악들을 찾아 인터넷을 떠도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POP 시장은 결국 전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있는 여러 문화권의 힘겨루기가 이뤄지는 시장이다. 뛰어나기 때문에 POP 시장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POP 시장에서 승리한 자를 뛰어나다고 추켜올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해외 시장의 Follower를 벗어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할 수 있는 Pioneer로서의 도약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저널리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