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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브 MAROB Sep 21. 2020

드디어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입사 5년 만에 이룬 커리어 전환


난 콘텐츠 마케터다.


아니, 콘텐츠 마케터''다.

지금은 잠시 회사를 떠나 앞으로의 나의 삶을, 내 커리어를 어떻게 가꾸어 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의 전공은 경영학과였다. 경영학과라 하면 '졸업해서 무슨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는'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는 학과다. 실제로 내 경영학과 동기들 중 현재 영상 업무를 하는 친구, 변호사가 된 친구, 또 사내 모델을 하는 친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일반 기업,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긴 하지만.) 아무튼 대학교 학과를 선택할 당시 대학 합격의 기쁨에 취해 학과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때문에 난 부모님께서 추천해주신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경영학과를 선택해서 하나 다행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에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다행은 그 안에서 마케팅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었다.

언제가 계기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학 시절 내내 마케팅 관심이 있던 나는, 일명 경영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회계, 재무, 기획 수업에는 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마케팅 관련 수업이라 하면 꼭 찾아들었고, 특히 불가해하게도 광고가 좋아 옆 광고 홍보 학과의 광고학 수업도 더불어 기웃거리곤 했다.


'마케팅이 왜 좋았을까'하고 생각해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재미있어서'가 가장 본질에 가까운 솔직한 답변인 것 같다. 다만, P&G나 도브와 같이 여러 글로벌 회사의 감동적인 마케팅 캠페인이나, 촌철살인 같은 광고 카피 속에 나를 이끄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언젠가는 '광고천재 이제석'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때 책 속에서 본 광고들이 '쿵' 나를 때렸다. '광고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런 광고를 만드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하고 상상하고 고민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속터미널 옆 경찰청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광고천재 이재석'이 만든 광고를 눈여겨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광고천재 이제석' 中 광고 사례


'이제석 광고 연구소' 광고 사례


신입사원 인사 배치 전, 인사팀에게 수차례 어필을 했다.

"꼭 마케팅팀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마케팅팀에 배치되지 못했다. 숫자를 다루고, 매출을 다루고, 상품을 패키지해 고객에게 제안하는 일을 돕는 영업 관리 업무. 이것이 나의 첫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는 학교 동아리가 아니니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대신 영업 관리 업무를 하는 동안 난 호시탐탐 마케팅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고 5년이 지나자 운이 좋게도 나에게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당시 내가 소속해 있던 팀에서 내부 소규모 마케팅 TF(Task Force)을 구성하게 된 것인데 거기에 지원할 사람을 뽑고 있어 냉큼 지원하였다.


TF에서 처음 마케팅 일을 배우기 시작하니 회사가 더 이상 회사가 아니었다. 마케팅 업무는 아무래도 초짜라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냥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에 열심히 였던 시기였다. 마케팅 에이전시와 처음 일하는 주제에 덜컥 전화해서는 마치 업무 프로세스를 다 꿰고 있는 척, 마케팅 짬밥 좀 먹은 사람인 양 가이드를 줬고 그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일을 익히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는 않은 1가지의 일을 10가지로 파생시켜가며 일하고 있는 나를 보며 같은 TF 내 마케팅 3년 차 선배는 자주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쯧쯧쯧..."


입사 5년 만에 다시 한번 더 입사 뽕을 맞은 셈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 TF 이후 원 부서 복귀가 원칙이라 난 원래의 영업 관리 부서로 돌아가야 했지만 마케팅 부서로 이동해 동일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긴 면담 끝에 결국 승인을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입사 5년 만에 당당히,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내 이름을 건 마케팅을. 그 기분을 단순히 '너무 행복했다'라고 만으론 표현할 수 없었다. 5년 동안 흥미도 없는 숫자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짓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숫자와 안녕(이라 생각했다.)이었다.


'아, 드디어 내가 마케팅을 하는구나!'


나에게 마케팅은 그야말로 꿈의 업무였는데 심지어 'OO회사의 마케팅'이라니. 말만 들어도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멋있고 전율이 이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평생 일해 내 뼈를 묻으리. 이제는 나도 마케팅 원론 케이스 스터디에 나올법한 '삐까뻔쩍'한 마케팅에 도전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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