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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미지의 등장은 '본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재정의한다. 전통적으로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현실의 흔적을 통해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 속의 풍경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고(혹은 존재했다고) 전제한다. 이 전제가 사진을 보는 행위에 독특한 무게를 부여한다.
AI 이미지를 볼 때 이 전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AI가 생성한 풍경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AI가 생성한 인물은 누구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이미지에 반응한다—아름다움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고, 경이를 느낀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적 반응이 이미지의 존재론적 지위와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진짜'가 아닌 것에도 진짜 감정으로 반응한다. 이 사실은 인식론적으로 심오한 함의를 가진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진의 존재론에서 중심적인 질문이었다. 이 사진 속의 사람은 누구인가, 이 풍경은 어디인가, 이 사건은 언제 일어났는가. AI 이미지에서 이 질문들은 무의미해진다. 대신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닮았는가', '이것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이것은 무엇을 상상하게 하는가'. 지시에서 유사성으로, 존재에서 가능성으로, 사실에서 상상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AI 이미지의 윤리적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이다. AI 모델은 수억 장의 이미지를 학습하는데, 이 이미지들의 상당수는 저작권이 있는 작품들이다. 이것은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존재론적 문제이기도 하다.
AI가 학습한 이미지들은 통계적 패턴으로 용해된다. 개별 작품의 흔적은 패턴 속에 녹아 들어가 식별 불가능해진다. 이 과정은 소화(digestion)에 비유할 수 있다—음식이 영양소로 분해되어 몸의 일부가 되듯이, 개별 이미지는 통계적 패턴으로 분해되어 모델의 일부가 된다. 문제는, 소화된 음식에 대해 요리사에게 로열티를 지불하는 관행이 존재하지 않듯이, 패턴으로 용해된 이미지에 대해 원작자에게 보상하는 메커니즘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AI 이미지의 존재론적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이미지가 '복제'인가 '창작'인가라는 법적 질문은, AI 이미지가 존재론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의존한다.
사진은 과거를 담는다. '이것이 있었다'는 과거형이다. 영화는 현재를 흐르게 한다. 들뢰즈가 말한 시간-이미지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보여준다. AI 이미지는 어떤 시간성을 가지는가?
AI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시간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시간에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시간의 평균값이다. AI가 '1920년대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할 때, 그 이미지는 1920년대에 찍힌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20년대라는 시간의 통계적 환영이다. 실제의 1920년대가 아니라, 1920년대에 대한 이미지들의 평균값이다.
이 시간성의 부재는 AI 이미지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한다—그것은 지나간 순간을 붙잡아 둔다. AI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밖에 있다—그것은 어떤 순간도 붙잡지 않았으므로, 어떤 순간도 잃지 않는다. AI 이미지는 영원한 현재에 존재한다—과거의 기록도 아니고 미래의 예측도 아닌, 가능성의 영원한 현재.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를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 보았다.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고, 전화기는 청각의 확장이며,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 AI 이미지 생성 도구는 무엇의 확장인가? 그것은 상상력의 확장이다. 인간이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지만 손으로 실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를, AI는 실현시켜 준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감각적 확장이다—내면의 비전을 외부화하는 능력.
미적 경험의 조건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칸트는 미적 판단을 '무관심적 쾌(disinterested pleasure)'로 정의했다—대상의 실용성이나 도덕성과 무관하게, 순수하게 형식적 아름다움에서 오는 즐거움. AI 이미지는 이 무관심성을 극단까지 밀고 간다. AI 이미지는 현실을 지시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 이미지를 순수하게 형식적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다. AI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이것은 어디인가', '이것은 누구인가'를 물을 수 없고, 오직 '이것은 아름다운가', '이것은 무엇을 환기하는가'만을 물을 수 있다.
이것이 AI 이미지가 가져오는 미적 경험의 독특한 조건이다. 현실에 대한 참조가 사라진 자리에, 순수한 형식의 경험이 남는다. AI 이미지는 어쩌면 칸트가 꿈꿨던 순수 미적 경험에 가장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현실의 무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순수하게 형식적인 아름다움의 경험. 물론 이것이 AI 이미지의 유일한 미적 가능성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AI 이미지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미적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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