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cud Jun 07. 2024

취향의 적나라함

콘텐츠 제작자로서 취향을 고려하여야 하는 이유

때로 규범적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적 명제와 현실을 반영하는 진술 명제가 혼동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명제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이상이자 가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들여다보면 인종, 성별, 계급 등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은 만연해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교육과 취업의 기회는 여전히 가정 배경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평등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우리 사회는 민주적이다" 라는 명제에서, 민주주의는 분명 우리가 추구해야할 정치 이념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여전히 많은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에서의 불공정한 관행, 특수 이익집단의 로비, 시민의 정치 참여 부족 등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를 완벽한 민주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명제와 현실 진술 명제의 혼동이 사회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불평등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평등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을 동일시 할 경우,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한 개혁의 동력은 약화될 것이다.


취향에 관한 기만명제는 "취향은 단지 다르다" 이다. 이 명제는 일면 취향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취향의 위계와 그에 내재된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기만적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취향이 단순히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계급에 따라 형성되는 문화자본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상류층은 어릴 때부터 고급문화를 접하고 체화하면서 고급취향을 형성하는 는 반면, 중산층 이하의 계급은 대중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대중취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취향은 계급에 따라 위계화되며, 고급취향은 대중취향보다 우월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취향은 단지 다를 뿐"이라는 명제는 취향의 계급성을 부정하고, 모든 취향이 동등하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급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문화자본을 과시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대중취향을 가진 이들을 폄하하곤 한다. 따라서 취향의 위계와 그에 따른 차별을 외면한 채 취향의 다양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기만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취향이 존중받아야하고, 취향 차이로 인한 차별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취향에 내재된 권력관계를 직시하고, 취향의 위계구조를 해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들은 상류층의 고급 취향을 동경하고 그 아비투스를 닮아가길 원한다. 반면 상류층은 자신들을 대중과 구별짓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고급 취향을 개발하고 선을 긋는다. 이러한 좇고 쫓기는 취향 전쟁은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대표적으로 패션과 음식의 예가 있다.


패션에서 상류층은 독특하고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취향과 지위를 과시한다. 반면 대중들은 이런 고급 패션을 동경하며 윳가한 스타일의 모조품을 구매하곤 한다. 그러나 상류층은 대중화된 스타일과 차별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롱누 트렌드를 수용하고 창조한다. 예를 들어 몇년 전 발렌시아가의 '어글리 스니커즈'가 유행했을 때 처음에는 기괴한 디자인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곧 명품으로 수용되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유사한 디자인의 신발들이 대중 브랜드에서도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이동하였다.


음식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상류층은 믿기 어려운 식재료를 사용한 고급 레스토랑을 선호하며, 이국적이고 새로운 음식 트렌드를 빠르게 수용한다. 한때 퀴노아, 아보카도, 케일 같은 슈퍼푸드가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런 식재료들이 대중화되자 새로운 음식 트렌드를 찾아내섰고, 최근에는 곤충 식단, 발효 음식 등으로 새로운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이처럼 취향을 둘러싼 계급 간의 추격전은 끈임없이 반복된다. 상류층이 새로운 취향을 선점하면 대중이 이를 모방하고, 상류층은 다시 새로운 취향을 찾아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데, 취향은 단지 개인의 기호가 아니라 계급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취향의 적나라함과 계급적 가식의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취향은 개인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속성이 있기에, 계급 간의 구별짓기에 노골적으로 동원되곤 한다. 상류층은 고급 취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고 대중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는 취향이 자본(문화자본 등)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재생상하는 수단임을 재확인케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상류층은 자신들이 취향이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우월한 교양과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고급 예술을 감상하고 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의 숭고한 인격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의 특권적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위선적 태도로 비칠수 있다.


이런 계급적 가식은 중산층에서도 발견되어진다. 중산층은 상류층의 취향을 모방하여 자신들을 하층민과 구별 짓고 싶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류층처럼 보이려는 태도를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검소함, 성실함 같은 중산층적 가치를 내세우며 도덕적 우위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들의 취향이 경제력의 한계 내에서 형성 될 수 밖에 없음을 감추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이처럼 취향을 둘러싼 고루한 계급적 위선은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이 계급적 조건과 무관하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취향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노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취향의 계급성을 마케팅과 브랜딩에 활요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특정 계급의 취향을 공략함으로서 효과적인 타겟팅이 간으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 간의 갈등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자는 이러한 딜레마를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콘텐츠 제작자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계급의 취향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한다. 단순히 표면적인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그 계급의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미적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취향을 자극하는 콘텐츠와 상품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급 브랜드의 경우, 장인정신, 전통, 희소성 같은 가치를 부각시키는 스토리텔링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계급 간의 위화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계급의 취향을 맹목적으로 우상화하거나, 다른 계급의 취향을 폄하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대신 각 계급의 취향이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서로 다른 취향 간의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발마직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콘텐츠 제작자는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각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콘텐츠와 상품의 다양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변화하는 취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제작자는 자신의 콘텐츠와 상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단순히 눈앞의 이윤 추구에 급급해서는 안되며,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취향의 위계와 차별을 완화하고, 모두가 자신의 취향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브랜드로 성장해 나갈 수 잇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3부 _ AI의 여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