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out of the body
“한편에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편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 그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며… 어쩌면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픽션과 다큐멘터리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진짜 현실이 숨어 있다. 우리의 현실은 허구와 진실로 명확히 구분될 수 없다. 유니콘은 실재하는가? 실재란 무엇인가? 유니콘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기에 허구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암흑물질은 어떻게 실재라 할 수 있는가?
예술은 이런 것이고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것이다. 바로 정보의 양과 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우리는 정확한 메시지는 탈주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빗나간 메시지만이 새롭고 창조적인 의미를 태동시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꿈이다.
가상에 머물 것이냐, 진짜 현실을 살 것이냐는 빨간약과 파란약의 논리가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현실이 존재한다.
백색소음은 최대치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않는다. 정보치는 최대지만 어떤한 의미도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두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대로 어떠한 의미도 생산할 수 없지만, 반면, 모든 의미가 될 수 있는 가능태로서 존재의 바다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화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완벽한 멸균 진공 상태를 지향한다. 이질적인 것을 제거하고, 변수를 통제함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완벽히 설계된 무한 궤도 열차인 설국 열차는 영원히 지속 될 수 없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예술은 사이버네틱스 예술이 아니라, 사이버네이티드된 삶을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
회로는 닫힌 상태에서 기능한다. 열린 회로는 기능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동체일 경우에 한해서이다. 우리는 무수한 존재들과 무수한 가능태들과 연하여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독단자로서 서 있을 수 없다. 타자와 연결되어 새로운 가능태로 변모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