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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베르게 Sep 16. 2019

여행을 통해 볼 수 있는 것들

여행을 통해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어요.

- 체왕 팔조르, 1975년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 체왕 팔조르, 1983년


오래된 미래 p196




최근 우연인지 필연이지 내게 온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은 라다크라는 인도와 티베트 중국의 접경지역에 있는 작은 나라가 문명 이전의 결속력 있고 불교의 영향으로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이 자본과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저자(헬레나노르베리 호지)에 의해 저술되어 있다.

처음 저자가 라다크에 방문하여 현대사회에 전혀 다른 방식의 가치관과 생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다 서구의 자본과 문물이 들어오며 라다크가 자본주의 국가로 변해가는 과정 사이에 얼마나 많은 부작용과 불행들이 생겨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는 라다크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이 최초에 자본주의 국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묘사해 놓은 것과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우리나라에서도 느껴지는 아주 슬픈 현실이다.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배려는 라다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마찰이나 갈등이 생길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소남의 이웃 사람의 경우에서와 같이 누군가가 사회의 불문율이 되어 있는 미덕을 깨뜨리는 때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은 지극히 큰 관용뿐이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그와 같은 배려심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개인에게 부감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오래된 미래 p111


외부세계 사람들은 사전 예고도 없이 라다크 땅에 몰려들었다.
외국 관광객 한 사람이 하루에 쓰는 돈은 라다크의 가정이 1년 동안 쓰는 돈과 맞먹을 정도였다. 라다크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면 생존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이 너무 생소했다. 먹을 것을 구할 때도 의복을 구할 때도 거처를 마련할 때도 모두 많은 돈이 필요한 외국인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던 라다크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는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달려와 내 손에 살구를 꼭 쥐어주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 그 어린아이들은 낡은 서양식 옷을 입고 소설에난 나오는 거리의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칙칙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외국인들과 마주치면 빈손을 내밀며 '한 푼 만 주세요, 한 푼 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입버릇이 되어 버렸다. 
오래된 미래 p187


위의 구절을 읽으며 해외여행을 할 때 만난 길거리의 아이들과 볼리비아에서 만난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동시에 교차하며,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내가 처음 해외를 나간 건 2002년 인도네시아였다. 당시 이모부께서 인도네시아에 주재원으로 나가 계셔서 방학 동안 그곳을 방문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와 생활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집에서 음식과 청소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의 한 달 월급이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채 안된다고 하였다. 

당시 그곳은 수라바야라고 하는 도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관광객이 오거나 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사실 주변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작은 봉고차 한대에 안에 좌석은 물론이고 창문과 문에 매달려 가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한 번은 발리로 여행을 갔다.

당시 발리 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몇 개월쯤 지난 때라 관광객도 많지 않고 바다에 쓰레기가 왜 이리 많은지 수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꿈에 부풀고 상상 속에 있던 발리는 내게는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데 그곳에서 특이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닷가에 서 있는 큰 페리에서 동전을 바다로 던지면 대략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바다로 점프하여 그 동전을 꺼내오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너무나 신기하고 멋진 장면이었다. 그 높은 곳에서 점프하여 동전이 바다로 가라앉기도 전에 동전을 꺼내오며 햇살에 빛을 반짝이며 보여주고 또 동전을 던져달라고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외국인들은 박수를 치고 신기해하면 동전을 계속 던지었다. 

아이들은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몸을 가지고 계속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익숙하다고 하지만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치 않았을 모습이었다. 

또한 도로에서는 신호에 차가 멈추어 서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나타나 유리창에 액체 세제를 뿌리고 순식간에 유리창을 닦아낸다. 그리고 창문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위험한 차 도속에 몸을 던지고 계속해서 하루 종일 유리창을 닦아낸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나와 아내는 아프리카 여행 중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나는 아이들에게 즉석사진을 인화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렇게 여행 중 작은 마을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처음에는 처음 본 듯한 동양인이 낯설고 신기한지 다가서지 못하고 쭈뼛쭈볏 거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그 모습을 보여주면 그제야 조금씩 다가와서 핸드폰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을 그 자리에서 인화하여 선물로 전달하면 신기해하다가 밝은 웃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현지 '힘바' 부족 마을에 들어섰다. 그곳은 그냥 입장할 수 없고 현지 부족의 안내를 따라서만 입장할 수가 있었다. 안내자를 따라 조금 들어가다 보니 아직 예전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힘바 부족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아이들은 반갑게 달려왔고, 부족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시며 조심스레 둘러보고 그곳에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부족의 생활을 보존하고는 있었으나 관광객을 하루에 두 번 받아들여 문명이 침범해 버린 곳이었다.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우리들의 주머니를 만지며 먹을 것이나 무엇인가를 달라고 계속 요청하였다. 

그곳에 아이들에게도 사진을 남겨주고 싶어 사진을 찍으니 손으로 자연스레 브이(V)를 지으며 웃는 모습이 다소 낯설기도 하였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아직 더 어린아이들은 신기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라다크 부족과 아프리카 부족 사이에서는 차이가 있다. 

라다크 부족은 자급자족 생활과 농경사회가 안착된 상태여서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의 결핍이 크지 않았다. 

물론 결핍이 없는 것과 풍족한 것의 차이는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검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물과 식량이 부족하기에 단순비교 하는 것은 옳지는 않다.


그들은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라면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들은 비료로 쓰는 것이 라다크 사람들이다. 
오래된 미래 p75 


그리고 최근에는 코인트리가 활동하고 있는 남미의  볼리비아에 다녀왔다. 

볼리비아는 남미 중에서도 과테말라, 온두라스와 함께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코인트리가 교육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포토시 주의 뽀꼬 뽀꼬 지역은 더 시골이다. 

지난번 '사명감에 대하여' 글에서도 표현한 바와 같이 공책 한 권, 연필 하나를 받으러 몇 시간을 걸려 오는 정도로 가난하다. 

산속에 마을들은 아직도 현지 전통의상을 입고 양과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온화한 미소가 담겨 있고 아이들의 미소는 티끌 없이 해맑다.

물론, 삶이 힘들고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도 있다. 주로 그들을 보면 라다크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일자리를 잃고 자신들이 설 땅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감사의 표시로 내어 주고 우리들에게 음식을 대접해 준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냥 바로 돈을 쥐어 줄 수는 없다. 

그것은 금세 사라지고 마는 오히려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 도 있는 행동이다. 

아직 문명과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산속 마을에는 차라리 그런 자본주의와 개발이 더 이상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작은 것에 감사하고 땅에서 나는 것에 감사하며 상대적 비교와 박탈감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들은 자본주의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있다. 일률 단편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경쟁하며 상처 받고 돈(물질적 가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주입당하고 있다. 지금도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지 못해 주위와 경쟁하며 자본주의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생활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나라가 빠른 경제발전 속에서 어떻게 그러한 부작용들이 생겨났는지 모른 채 살아왔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여행의 경험은 책 속의 내용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그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도 경쟁 속에 경주마처럼 달리고만 있었다면 무한한 삶의 여러 가치 중에 소중함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사진 선물하기


힘바 부족 아이들


볼리비아 산 속 마을 해맑은 아이들, 선물로 준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다.


볼리비아 산속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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