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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트바리 Apr 05. 2022

카메라가 주는 선물

라이카 M11과의 짧은 교감

얼마 먹지 않은 나이를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카메라가 없었던 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중학생 때 아버지께 카메라를 사달라고 처음으로 떼를 쓴 기억이 났다. 열여섯 즈음부터 내 손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었다. 그 때부터 였을까. 카메라와 관련된 삶의 시작이. 고등학교 때는 사진부를 3년 내내하면서 회장까지 했었다. 그렇게 순탄하게만 흘러온 것 같았는데 35살 된 지금. 그러니까 카메라를 들면서 나의 일상을 기록한 지 20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싶지 않아졌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말이다.


20년 간 바뀌어온 내 카메라들의 성능은 정말 과분할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데 과연 남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카메라가 손에 들려져 있어도 재미가 없었다. 나는 작가도 아닐 뿐더러 그냥 취미 사진가일 뿐인데 왜 이렇게 돈을 쓰고 시간을 쏟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사진의 열정도 그렇게 파묻혀져 갔다.


그런 나태와 환멸의 어느 사이에 있던 시점에 라이카를 만났다. 그것도 내가 써봤던 카메라 중에서 가장 고가의 카메라를 말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라이카의 디지털 바디. '허세와 빨간 딱지라는 심볼 빼고는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궁금함이 밀려 들었다. 크게 다를까?




라이카는 대표적인 인물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한 명 꼽자면 역시 故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라이카이지 않을까.

라이카는 흔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바디로 알고 있다. 디지털이 된 지금 그런 부분의 효용가치가 있나에 대해서 고민해봤지만, 내 손에 라이카가 들려진 순간 지금까지의 의구심은 머쓱할 정도로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라이카를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만듦새.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의 만족스러움이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애초에 통으로 깎아내는 유니바디 방식이라 그런지 유격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 손에 카메라를 얹고나니 곧바로 전해져온다. 확실히 황동은 황동인가보다. 크기에 비해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무게감은 고스란히 조작감에서도 느껴진다. 다이얼의 촉감이 내가 쓰고 있는 후지필름의 X-PRO2와는 근본이 다르다.



라이카의 뷰파인더는 불친절하지만, 적응되면 MF 쓰기 너무 좋은 시스템.

사실 라이카의 바디들이 카메라 스펙적으로 미러리스 회사들이나 DSLR 회사들보다 나은 건 없다. 다만, 그런 게 사진 찍을 때만큼은 생각나질 않는다. 그저 나는 셔터를 누르고 있을 뿐이다. 라이카를 들었다고 감상적으로 변했나?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건 아니다. 그저 뷰파인더를 보고 초점을 맞추면서 철컥 철컥. 나는 투박한 셔터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카메라를 처음 쥐었을 때가 생각났다. 지금처럼 전자식 뷰파인더는 아니지만 내가 보는 것과 동일하게 나오는 광학식 뷰파인더와 함께 둔탁하지만 손바닥으로 전해져오는 미러 충격 같은 것들 말이다. 소위 손맛이라고 불리우는 감각이 주는 일종의 향수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그래서 뭔가 찍을 거리를 만들기 위해 퇴근 후 집에 가지 않고 라이카를 들고 충무로에서 종각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걸으면서 쉴 새 없이 담아냈다. 회사에서 나온 직후에는 사람들이 나를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담으려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10분쯤 걸었을까. 이어폰도 빼두고 그저 2시간 30분 가까이를 골목을 누비며 셔터를 눌렀다.


너무 신기했다. 그저 카메라가 내가 자주 쓰던 소니나 후지필름에서 라이카로 바뀐 것 뿐인데 이렇게까지 재미를 느끼다니.




라이카는 그 자체로 사진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나는 라이카를 들고나서는 취미사진가로서의 나태와 환멸이 사라지고 목표가 생겼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흘려보냈지만 이 카메라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나는 카메라 유통 회사에서 사진/영상을 촬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장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의 카메라를 고를 때에도 나만의 기준들로 고르고 골라왔다. 그런데 그런 여러 가성비와 가심비를 아우르는 기준들이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철컥거리는 셔터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하나 사면 좋으련만 찍을 때는 생각나지 않던 가격이 이제서야 생각난다. 언젠가는 한 번쯤 소유하고 싶은 카메라다. 아쉽지만 다음을 혹은 다음 생을 기약할 수 밖에. 챨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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