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정거장. 볼리비아 우유니(Salar de Uyuni)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
이토록 습기를 가득히 머금은 사막이라니.
사막의 기본 전제가 '건조함'이라 한다면 우유니 사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막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버린다. 12월에서 3월, 우기동안 내린 비는 소금사막을 지상 최대의 반사경으로 바꿔버렸다. 현지 가이드는 기후 변화의 위기가 이곳까지 찾아와 강수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우려했지만 소금호수와 첫 대면인 나로서는 걱정보다 황홀감에 심장이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해가 뜨면 2개의 태양이 세상을 지배했고, 밤이 되면 발아래로 별이 쏟아져 내렸다. 세상의 경계는 이곳에서 모두 무너졌다. 구름은 사방으로 흘렀고, 총 천연색의 그림자가 호수 위를 걸어 다녔다. 찰방찰방 발 끝에서 부서지는 염수의 파도는 뽀드득, 사각..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다. 정말이지 소금호수라는 거대한 큐브에 갇힌 듯했다.
하지만 길 위의 시간을 선택한 여행자에게 떠남은 숙명, 큐브를 벗어나 더 넓은 우유니를 만나기로 맘먹었다. 10,582 km²의 지구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유니이니 모두가 같은 모습일리 만무하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이르는 길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나흘까지 이어지지만 짧고 굵은 이틀 짜리 로드트립으로 사막 탐험을 시작했다.
흩어진 볼리비아의 꿈: 기차무덤
증기 기관차의 발명은 우리의 삶을 빠르고 풍요롭게 변화시켰지만 뒤틀린 욕망의 그림자도 함께 남겼다. 그 대표적인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차무덤Cementerio de Trenes'이다. 우유니 마을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황량한 사막지대에 쓸모를 다한 기차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사막의 먼지바람을 뒤집어쓰고 형체만 겨우 남은 녹슨 고철 덩어리는 자원부국 볼리비아의 혼란을 대변하는 유물이 되었다. 1872년 철도 건설이 시작될 즈음에만 해도 볼리비아는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큰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내륙에 매장된 천연가스, 리튬, 금, 은, 구리, 주석, 소금 등 풍부한 자원을 타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태평양까지 운반하는 것이 이 열차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철도를 건설하고, 미국, 영국, 독일 등지에서 기관차를 들여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유니의 미래는 온통 핑크빛이었을 게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예상하던 대로만 흘러가던가.
철도가 연결된 지 오래지 않아 칠레와 볼리비아의 긴장은 극에 달했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우유니 인근의 광산은 문을 닫거나 버려졌다. 그때부터 100여 대가 넘는 기차는 영원히 멈춰 섰고,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염분을 머금은 바람에 부식되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우유니 사람들은 기차의 고철을 뜯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기관차의 부속품들은 볼리비아 경제의 어두운 단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픈 흔적만 남은 것은 아니다. 오늘날 기차무덤은 여행자들에겐 여전히 흥미로운 관심의 대상이다. 기차의 녹슨 표면과 그라피티는 건조한 땅에 수놓은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고, SNS시대에 최적화된 여행지 풍경에 딱 들어맞았다. 기차 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고, 제각기 매력 넘치는 포즈로 여행의 추억을 박재했다. 인위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지상 최대의 설치예술 작품이 우유니에 있었다.
거대한 소금공장 콜차니 마을
빗물로 가득 찬 소금사막을 벗어나 찐 소금을 만나기 위해 콜차니Colchani 마을로 향했다. 2만 년 전 바다였던 이곳이 융기하면서 내해를 만들었지만 건조한 날씨는 하얀 소금만 남기고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에 매장된 소금 결정은 최소 100억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데군데 소금이 만든 작은 피라미드가 눈길을 끈다. 생존의 필수 요소로 귀하게 여겨졌던 소금이 현대에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 소재가 되어 미래 전략자원으로 그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네들의 삶도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까? 그 길이 만만찮아 보인다.
콜차니 마을 사람들의 주소득원은 소금 채취와 가공이지만 여행자들이 방문하면서 기념품 가게도 늘어나고 있다. 알파카로 만든 옷과 수건들, 작은 인형, 키링 등 있을 겉 다 있다. 소금 결정으로 만든 조각품도 어설프지만 나름 박물관임을 자처한다. 전 세계에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광물 자원의 소리 없는 전쟁을 아는지 모르는지 콜차니 마을은 평온하기만 하다.
다시 사막으로 돌아와 이번엔 진짜 건조지대를 찾아 나섰다. 정해진 길이 없으니 오로지 가이드의 직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물웅덩이를 지나니 투명하게 빛나던 사막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순백의 지대에 접어들었다.
콜차니 마을에서 소금 가루를 채취했다면 이곳에선 소금을 채취해 벽돌 형태로 가공하고 있었다. 소금이 모이면 안데스의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 자연 건조하거나 불에 구워 수분을 없앤다. 우유니에서 수확한 소금은 질적으로 우수하지만 노동력과 인프라 부족으로 크게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육각형 결정체가 사각이는 소리를 들으며 사막을 걷는 것도 좋지만 소금사막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필수코스는 이곳에서만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이 이 유일한 목적을 공유하며 어떤 노력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노력을 하는 건 우리의 가이드 H였다. 요리사이자 운전기사, 가이드에 이제 사진사 역할까지 도맡아 몸을 사리지 않는다. 우유니 가이드는 그야말로 만능 재주꾼이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사진사인 듯하다. 평생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나 멋진 사진 하나 쯤은 남기고 싶을 테니 말이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른 곳은 우유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국기광장Plaza de las Banderas Uyuni과 소금호텔이다. 여행자들이 기념하기 위해 자국의 국기를 하나씩 걸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우유니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염분 바람에 국기가 훼손되기 일쑤지만 또 다른 방문자에 의해 교체되면서 유지한다. 태극기가 잘 보이는 곳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과자로 만든 집은 들어봤어도 소금으로 만든 호텔이 있다니... 벽, 바닥, 계단을 비롯해 호텔 내 가구까지 모두 소금이다. 진짜 소금이냐고? 정말이다. 소금을 동일한 크기의 블록으로 만들어 쌓아 올렸는데 꽤 튼튼해 보인다, 콜차니 마을에서 본 소금블록이 이리로 옮겨왔나 보다. 숙박하지 않아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데, 다만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소금 맛을 보지 말 것!!"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