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해 Nov 21. 2016

뒤처짐

 1. 잠

새벽, 지금의 나에겐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특별한 시간이지만 어린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잘 때가 가끔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와 밖을 바라보면 불은 다 꺼져있고, 남들은 다 잠을 자고 있지만, 나만 혼자 잠을 자지 못 해 왠지 어딘가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새벽의 뒤처짐, 어린 나이엔 그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이러다가 영원히 잠을 자지 못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불안해 엄마를 깨우면 엄마는 피곤한 몸으로 나를 업고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잠을 자야지' 이런 말도 없이, 그저 잠을 못 자 무서워 하는 아이를 조용히 달래줄 뿐이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를 업고 조용히 달래주면 나는 어느새 잠에 빠졌다.


 2. 시험

시험이 끝났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열심히 놀러 다닌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험이 끝나는 날엔 무얼 하고 놀지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고, 시험이 끝나는 당일 즉흥적으로 알아서 모여 놀러가는 아이들도 있다. 슬프게도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 했다. 나도 친한 친구들을 모아 놀러가고 싶었지만, 친한 친구들은 저마다의 친한 친구들과 이미 약속을 잡아놨었다. 이제서야 느끼는 건데, 나는 알게 모르게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였다. 게임 용어나 영어 단어를 외우기 보단 영화배우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다녔고, 주말에는 집구석에서 영화만 보곤 했다. 이런 아이가 막상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고 하니, 어색했던 거다.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오늘 만큼은 나도 놀고 싶은데.. 집에 가기는 싫은데.. 나는 왜 놀지 못 할까. 노는 법을 몰랐던 아이는 이렇게 처음으로 뒤처진 기분을 맛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활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