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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프쿠키 Aug 20. 2016

클라이언트는 지켜보고 있다

지난겨울부터 취미로 들었던 현대무용 수업을 얼마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만두었다. 늘 관객으로 보기만 하던 현대무용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예전에 찔끔해봤던 발레보다 나랑 어울리는 것 같았다. 딱 6개월을 다녔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 꾸준히 다닌 건 대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물론 이번 생애에 무용을 '잘' 하게 될 일은 없어도 되는 만큼은 잘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건 일이 너무 바빠서 수업에 갈 여유가 없었던 것도, 부상을 당해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도, 하다 못해 수업료 낼 돈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성의 없는 태도를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어서였다.


일을 할 때 나는 늘 '을'이다(출판사에서 계약서를 쓸 때에는 갑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통용되는 '갑'스러운 지위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다니며 일을 해봤던 것도 아니니, 내게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라는 존재는 로 나 같은 공급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나마 내가 클라이언트가 되어볼 일이 생기면, 과연 돈을 내는 입장에서 공급자에게 내가 뭘 기대하고 바라는지 내 마음을 유심히 관찰해본다.


무용학원의 정확한 시스템은 모르지만 선생님도 정해진 월급을 받는 정규직이 아니라 수업에 따라 강사료를 받는 프리랜서다. 나와 같은 학생(고객)에게 수업(서비스)을 제공하고 수업료를 받는다. 어릴 때 부모님이 내주신 돈으로 학원에 다녔을 때 선생님은 마냥 선생님으로만 보였는데, 머리가 커서 직접 돈을 벌면서 내 돈을 내고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듣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일에 있어서는 만년 을인 나지만, 수업을 듣는 이 순간은 내가 바로 클라이언트, 갑님이시다. 


처음 몇 달 간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학생 수는 들쭉날쭉했지만 4~5명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같이 배우던 얼굴들이 하나 둘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수업도 틀어지기 시작했다. 수업 중 스트레칭을 시켜놓고 본인은 휴대폰을 잡고 있는 일은 예사였고, 언제부터인가는 1시간밖에 안 되는 수업을 은근슬쩍 3~4분씩 일찍 끝내는 거다. 급기야는 매일 같이 수업 몇 시간 전에 연락을 해 수업 시간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 보강 시간을 잡는데 나는 시간이 자유로우니 편하게 생각하시라고 배려해준 게 실수였다. 이후 선생님은 3회 연속 일방적인 휴강 통보를 해왔다. 그래도 내가 계속 눈을 반짝이며 다음 수업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지, 자신한테는 돈도 안 되는 수업을 내가 눈치껏 먼저 그만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수업을 그만 듣겠다는 내 카카오톡 메시지를 선생님이 '읽씹'함으로써 나의 첫 현대무용 도전은 6개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 수로는 내가 계산을 해봐도 강의료를 제대로 받기는 힘들었을 것 같고, 파릇파릇 꿈나무 전공생에 비해 뻣뻣하기 그지없는 의지박약 일반인 수업은 재미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당한 돈을 지불한 고객이라는 것을 그 선생님은 깜빡한 것 같다. 덕분에 나는 프리랜서로서 내 노동에 돈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런 걸 타산지석이라고 해야 하나.


돈을 내는 입장이 되니 다 보인다. 선생님이 뻣뻣한 나를 조금이라도 유연하게 만들어 보려고 애썼던 모습, 정신없는 발 동작 와중에도 상체를 꼿꼿이 세우려던 내 노력을 알아봐 주던 모습, 그러던 어느 날부터 배경음악을 바꾼다는 핑계로 수업 중 휴대폰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던 모습, 칼 같이 정확하던 수업 시간이 허물어지는 모습 등. 그리고 한 번의 큰 실수보다 치명적으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건 자잘한 실수들의 반복과 누적이었다. 그리고 지적하지 않는다는 건 내 실수와 잘못을 모른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다만 각박한 세상에 지친 어른들은 굳이 상대방을 위해 어려운 말을 꺼내며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냥 거슬리지 않을 만큼 참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홀연히 떠나버리는 게 속 편하다. 그러니까 내가 대충 적당히 하는데도 클라이언트는 모르네, 하고 좋아할 게 아니라 늘 돈값에 걸맞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약게 일하는 방법은 뭘까? 사전에 의하면 '자신에게만 이롭게 꾀를 부리는 성질'을 약았다고 한다는데. 글쎄, 어쩌면 클라이언트에게는 늘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게 최고로 약은 처세술이 아닐까 한다. 잔머리 굴리려고 해봤자 클라이언트는 다 알고 있으니까,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게 내가 진짜 인정받고 직업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어설프게 머리를 굴려서 잠깐의 안위를 누리는 건 사실 가장 약지 못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어쩌다 무용 선생님을 소재로 글을 쓰긴 했지만, 그 선생님도 다른 좋은 여건 속에서 즐거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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