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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프쿠키 Nov 02. 2015

방학의 방학이 시작되다

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지도 6년째가 되어간다. 마지막 학기가 끝난 이후로 한 달 반정도 출근해본 걸 제외하면 한 번도 정기적으로 어딘가에 나가본 적이 없는 나는 늘 개강이 언제인지 모르는 방학을 보내는 기분이다.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학교는 안 가도 학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늦잠자며 빈둥거리기도 하듯 나의 생활도 그러하니까.


맨날 방학이라고 빈둥거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낸 것만 같지만 한편으론 매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는 모든 일이 끝나는 순간이 오기를 학수고대해왔다.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해야 할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 사실 프리랜서로서 가장 암담하고 피하고 싶은 상황이기도 하지만 '이 일을 언제 시작해서 언제까지 마쳐야지'하는 계획 없이 어디에도 얽메이지 내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할 일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 일을 먼저 하고싶으니까.


그렇게 기다려온 일 없는 시간이 근 4년만에 찾아왔다. 그렇다. 그 전에도 모든 일이 끊겼던 시기가 한 번 있었다. 그땐 전혀 내 의지가 아니었고 이대로 망하는건가 싶어 아찔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날을 대비해 곶간에 식량도 쟁여뒀고(사실 이건 축내기 싫지만) 하고 싶은 일들도 잔뜩 대기하고 있다.


일 없는 첫 날.

집에서 하루종일 빈둥거렸는데도 이상하게 저녁 무렵 거부할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잠깐씩 깨기도 했지만 꿈도 여러가지로 내용 바꿔 꿔가면서 최종적으로 15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 두통약을 먹었더니 비로소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나는 잠 때문에라도 직장 생활은 못 할 것 같을 정도로 아무리 바빠도 잠은 충분히 자고, 몸이 안 좋을 때도 과로와 스트레스때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민망한데 나도 모르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긴 했나보다. 이제 몸도 다 풀린 것 같고 나를 위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매일매일이 방학 같은 내 생활에, 어마어마한 방학숙제를 마치고 드디어 방학 중의 방학이 찾아왔다. 물론 이 시간이 길어지는 건 안되겠지만 내 곶간에 더 다양한 곡식을 채우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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