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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지 개 Jun 20. 2024

떡볶이집 노부부

징검다리 연휴를 가족들과 복닥 복닥 하게 지내고 나니 매콤하고 달달한 게 당긴다. 오늘은 점심은 호젓하게 혼자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한다. 생각만 해도 좋다. '혼자'서 먹는 바깥 음식이라니. 오롯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혼자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우리 옆 동네에 아주 내 맘에 쏙 드는 떡볶이 집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집이었는데, 가게 창문 앞으로 온갖 튀김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어서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튀김이 당기던 날, 그 집이 생각나 우리 집에서 슬슬 걸어가서 떡볶이와 고추튀김을 시켰먹어봤는데 튀김보다는 오히려 달짝지근한 떡볶이가 내 스타일이었다. 떡은 방앗간에서 가져다 쓰는 것 같은 아주 통통한 쌀떡에다가 양념에 오랜 시간 끓여지고 졸여지고를 반복해서 쪽득쫀득한 떡에 양념이 아주 잘 배어있었다. 고추장, 간장, 물엿이 이 삼박자가 딱 맞는 그런 떡볶이다.


12시 반쯤 도착해 보니, 5명은 들어갈 수 있으려나 하는 내부의 좌석은 거의 만석이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원래 사장님으로 보이던 내 또래의 남자분은 안 계시고 대신 아버님(?)처럼 보이시는 할아버지와 원래 계시던 여사님 이렇게 두 분이 계셨다. 젊으신 남자 사장님(내 눈에 그렇게 보였던)은 어디로 가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시지?(물론 두 분이 부부라는 것도 나의 추측이다)라는 궁금점이 생기면서 두 분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예전 젊은 사장님이 하시던 역할을 맡아하시고 계셨는데, 주로 튀김과 떡볶이 주문이 들어오면 튀김을 다시 한번 튀기고 떡볶이를 담아주신다. 여사님은 모든 오더를 받아 할아버지에게 이거 담고 저거 담아라 등등의 진두지휘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지휘 아래 열심히 트레이닝 중이신 듯했다. 연세가 있으셔서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시지만 튀김도 잘 튀기시고 손님 응대에도 열심이셨다. 40줄에 들어서 시장에서 이미 한 물 간 나이가 되고 보니,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분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요즘 매장들은 여러 배달 업체들의 배달 및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카드 결제를 하는 등 일련의 모든 작업들이 전산화되어 있다. 저 어르신들은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회원가입을 하거나 모바일 뱅킹이 어려운 연세이실 텐데, 현장에서 '신문물'에 적응하시느라 얼마나 노력 중이실까를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손님이 현장에서 포장 주문하면서 튀김을 잘라달라고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귀가 어두우셔서 그 내용을 잘 못 들으셨다. 그 손님은 짜증이 난 어투로 '그게 아니라요, 튀김을 잘라달라고 했어요"

할아버지는 허둥지둥 '아 네, 알겠습니다' 하시며 바삐 손을 움직이셨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서글펐다. 단지 할아버지의 나이와 서투른 손놀림 때문이 아니라, 효율성을 위해 모든 것을 '띡띡' 컴퓨터에 입력시켜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일을 하려는 현대 사회에서 사라지는 인간미가. 사람은 나이를 떠나서 완벽할 수 없고, 실수를 한다. 이미 키오스크, 휴대폰 주문 등으로 비대면이 익숙해진 시대에서 사람 간의 접촉은 줄어들고 그 사이를 날로 발전하는 기술이 채웠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상대할 때조차 그 사람이 기술과 같은 퍼포먼스를 내기를 기대한다. 사람 간의 소소한 대화는 사라지고 상대에게는 서비스 제공을 잘했냐 안 했냐, 맛이 있냐 없냐 와 같은 평가만을 내릴 뿐이다. 


떡볶이를 주문하면서 그날따라 당기던 김밥도 함께 주문했다. 김밥에 대한 리뷰가 썩 좋지 않아서 시킬까 말까를 고민했는데 먹고 싶으니 일단 시켰다. 그런데 김밥이 너무 내 취향인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김밥은 꼬들꼬들한 밥으로 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부들부들하고 보슬보슬한 밥으로 만든 김밥이 목 넘김이 좋아서 좋다. 그리고 재료는 다양하게 많이 넣는 것보다 단순하게 단무지, 햄, 오이, 계란 등으로 채우는 걸 좋아하는데 딱 그런 김밥이었다. 거기다 따끈따끈하게 막 말은 김밥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가 김밥을 먹느라 떡볶이를 조금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리뷰를 전적으로 믿었다면 먹어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떡볶이집 노부부께서 장사를 오래 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열심히 사 먹고 기쁜 마음으로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를 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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