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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04. 2020

역전(逆轉)

오아시스에 이르기 전엔 계속 걷는 수밖에

내가 만든 서비스들을 쓰는 순수 이용자는 한 달에 10만 명 정도다. 이들을 위해서 아직까지 내가 쓴 돈은 천만 원이 넘는다. 10만 명의 사용자는 모든 걸 무료로 사용한다. 사용자분들은 하루 평균 4~40분 정도 사용하고 평점도 무척 높게 주셨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얼마나 벌었을까? 단 한 번도 수익 전환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운영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소시켰다. 인건비는 내가 개발했으니 나가지 않았지만, 모든 걸 자동화하고, 최적화하고, 비용을 깎고 깎아서 월 몇만 원까지 줄일 수 있었다. 제품을 팔아 돈을 벌지도 않았지만 나는 사용자들에게 내 제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비용은 내가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나는 멍청한 사업가다. 돈을 버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니. 재밌게도 이렇게 돈을 버리면서 살았는데 수익이 지출을 따라잡는 상황을 드디어 맞이 했다. 10만 명의 사용자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가치를 제공하고, 수익을 거두는 날이 왔다. 역전의 날이다.


나는 사업에 들어간 천만 원의 돈을 충당하기 위해 참 많은 일을 했다. 당근마켓도 없던 시기에 가진 것도 팔고, 알바도 뛰었다. 피씨방 바닥을 닦으면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군대에서도 프로그래밍을 했고,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500원짜리 캔커피로 식사를 대신하던 시절도 있었다. 군대에서 받는 2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모아서 사업 자금에 썼다.


그래서일까. 슬프고 외로운 순간이 정말 많았다. 반년 동안 만든 앱을 출시도 못하고, 좌절했을 때 나는 방구석에 앉아서 혼자 눈물을 삼켰다. 해외 투자 회사에서 자금 유치의 기회가 있었을 때 얼마 안 남은 군 복무 문제로 인해 포기해야 했었다. 피칭 한 번 하러 가려고 피 같은 10만 원을 쓰고 20분 만에 퇴짜를 맞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이 차갑고 외로웠다. 누구 하나 기댈 수 없이 오롯이 혼자서 견뎌야 했던 순간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도 많이 떠나갔다. 일에 미치고, 돈도 없으면 친구도 잃는다. 얼굴을 봐야 가까워질 텐데 나는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해서 할 말이 없었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처럼 나는 친구들에겐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진 않았다. 며칠씩 밥을 안 먹고, 잠을 못 자는 한이 있어도 열심히 살았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정말 몇 안 되는 한 두 명의 친구들에게 가끔 하소연하고, 힘든데 전화걸 곳이 없어서 그저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오던 날들도 많다. 그렇게 돌고 오면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일거리가 무겁게 앉아있었다.  


어디서부터 내가 틀렸던 건지 고민했던 날도 많았다.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는 이렇게 살게 된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이 큰 의미는 없었다. 고민을 할 필요 없이 현실을 봐야 했다. 오늘 내가 할 일을 집중하지 않으면 이뤄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고, 나를 도와줄 구원자도 없었다. 나는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나그네처럼 언제 올지 모를 오아시스를 향해 걷고 있었다. 오아시스에 이르지 못했으면 목이 말라도 걷는 수밖에 답이 없지 않은가. 내 삶이 그랬다. 신기루를 쫓으며 오아시스를 따라가는 삶. 그게 나였다.


나도 이제야 목을 축이는 순간이 왔다. 마이너스로만 찍히던 삶이 플러스로 바뀌는 순간이 오늘 도래했다. 지난 5년 동안 고생한 일들이 한순간에 역전하기 시작했다. 개발도 모르고, 사업도 모르던 놈이 고작 5년 만에 많은 수익을 벌 순간이 오게 되리라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엔 상상도 못 할 돈을 고작 며칠 만에 벌고, 내가 일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수 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돈 한 푼 쓰지 않고 운영하고, 그 어떤 직원도 없이 알아서 돌아간다.


5년이다. 혼자서 일하던 2년. 군대에서 공부하고 만들며 보낸 2년, 회사 팀원들과 보낸 1년.


나는 이 순간이 무척 멀리 있을 줄 알았다. 신기루만 보면서 살다 보니 오아시스에 가까이와도 이게 신기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물을 마신다. 오아시스에 드디어 왔다. 역전의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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