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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un 27. 2024

사랑과 체크메이트

2024. 6. 27.

Jeg Er Havren - Hans Ulrik

하루하루가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느끼며 뛰는 인생 같다. 새벽까지 방송을 하고 일어난 아침에는 9시부터 걸려오는 전화와 10시엔 사업 자료 평가를 위한 요청이 와있었다. 8천억 규모의 건설 사업과 연결된 IR 자료였다. 자료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매일 관리해주어야 하는 몇 가지 작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여의도로 향했다. 이벤트 준비를 위해서였다.



여의도까지 가는 길은 무더웠다. 여의도는 나에게 도전적인 장소이다. 금융감독원을 지나 여의도의 중심부를 천천히 거닐면서 이벤트 장소를 물색했다. 마음 같아선 금감원 정면에서 이벤트를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여의도에 대해 여러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곳의 거대한 자본의 상징들 때문이다. 거대한 언론사 건물들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는 빌딩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오만한 인간상들을 마주하다 보면 영원한 주인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 경제와 권력의 중심지는 계속 변화하지만 여의도는 여러 의미도 상징적인 곳이다. 그런 공간에 궁전만 한 빌딩들을 세워둔 금융 기관들과 한쪽 구석에 있는 국회의사당, 센트럴 파크를 연상케 하는 공원은 높은 IFC 건물에서 내려다보기 좋은 뷰라 할 수 있다. 


나는 성공에 대해 헌신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쉽게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운을 기대하며 산다. 그들은 부자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헌신할 만큼의 진지함은 아닌 것이다. 나는 헌신하고 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 게임에서 체크메이트로 킹을 넘어뜨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됐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눈앞에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어린아이 한 명을 구하는 선택을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눈앞에 죽어가는 아이를 가슴에 품은 체, 죽음에 놓인 아이들을 10명, 100명을 살리는 삶을 살기도 한다.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다. 한두 명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헌신으로 가능하지만 다른 단위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멸시하는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한다. 그들은 내 선택을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왜 저런 일을 하는 거야?' 하면서. 스스로 광대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광대가 되면서까지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부끄러운 삶은 광대로 사는 삶이 아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뭐라도 된 것처럼 고귀한 척을 하는 게 부끄럽다. 나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기에 내려간다 한들 그것이 대수가 아니다. 대표라는 직함이나 얼마나 많은 회장들을 만나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나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이제는 계몽에 목표가 있지도 않다. 도덕이나 사회 규범에 대한 기준도 딱히 없다. 나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말하는 도덕이나 규율은 니체가 말한 노예 도덕의 연장선 같기도 하고, 위선자들의 규범 같았다. 그들과는 무관하게 내 길을 간다. 어떻게 해서든 말이다.


내 사랑의 방향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한국인은 아니다. 나는 간절한 이들을 좋아한다. 종종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일을 해보곤 할 때면 나는 그들의 근면성과는 별개로 그들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발견하곤 한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패배의식에 빠져 뻔한 패배주의 담론을 펼치며 자위할 때, 자유를 진정으로 갈망하며 어두운 밤에 촛불을 켜고 공부를 하는 이들과 같다. 나의 관심과 사랑은 이들을 향해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게 있는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이 세상의 꼭대기서부터 내려오는 규칙과 절대성을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궁궐 같은 성전을 여의도에 펼쳐둔 수많은 금융 기관들과 은행들. 돈에 기생하는 언론사와 매일 같이 세탁기를 돌리는 연예인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게 뭘까. 그들의 진면목이다. 천만 영화배우가 있다 한들, 그가 아무리 인생을 걸쳐 거대한 업적을 이뤘다 한들, 수백억을 빼돌리고, 주가 조작에 가담해서 투자자들을 기망하고 다녔다면 그의 연기 인생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쓰레기들을 한 방에 싹 쓸어 버리고 싶다. 한국은 재밌는 국가다. 소시민끼리의 싸움에는 내 일처럼 분노하는 것 같지만 정작 시위할 힘은 없다. 시위는 넉넉한 자금을 지원받는 정치 세력을 뒤에 둔 노동 운동가들이 하고 있고,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결탁하고 있다. 얼마나 재밌는지 한국의 최대 기업이라는 삼성은 상속세로 기업이 오체분시의 위기를 겪었고, 해외 헤지펀드들은 한국 최고의 기업을 삼킬 기회를 승냥이처럼 노리고 있다. 경제계 정점의 목이 날아가는 것도 한국에서는 가능하다. 


온갖 쓰레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는 거대한 게임을 하고 싶다. 이들이 한 방에 무너질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내 인생에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이 있을까. 천박한 자본주의와 그들을 옹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두고 펼쳐온 세뇌를 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은 나와 같은 간절한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보게 했다. 그들을 보다 보니 이 세상을 알게 되고, 이 세상을 알다 보니 더욱 간절해졌다. 신이 있다면 나를 도와주시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길.


체스판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모든 체스 기물의 위치와 목적, 그리고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체스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기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내가 죽을 위기인지, 누가 나를 노리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체스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 킹은 누구인가. 킹 주변을 지키는 비숍은 누구인가. 무겁게 움직이는 킹 옆에 있는 재빠른 퀸은 누구인가. 


섞이고 섞인 모든 갈망이 인생을 휘감고 있는 기분이다. 아예 몰랐더라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사건들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진실들과.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겠지. 이 길의 끝에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그렇게 수많은 글자 사이에 본심과 거짓을 숨겨 적는다. 킹에게 체크메이트를 하는 날이 온다면 무척이나 기쁠 수 있도록 오늘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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