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블로그와 다를 바 뭐냐 싶어 접어두었다가 최근에 엄청난 필요성을 깨달았거든. 뭐냐면, 바로 '부캐'로서의 글쓰기지. 나도 나름대로의 소셜포지션이 있다고. 공식적인, 그러니까 돈벌이와 연결된 글은 블로그에 쓸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인 하소연이나 일기까지 블로그에 쓰기엔 너무 부끄럽달까.
사실 최근에 사고를 한 번 쳤다. 여느 때처럼 블로그에 일기를 휘갈겨 쓰고는 그만 '비공개' 설정을 깜빡한 것. 발행을 누른 후 그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비공개로 돌리기까지 한 30초 걸렸나. 내가 엄청난 인기인도 아닌데 설마 그 짧은 시간에 누가 봤겠나 싶었는데, 엊그제 어떤 분이 슬며시 물어보시더라. 그때 그 포스팅은 무슨 얘기였냐고. 어우 식겁.
요즘같은 정신머리로는 왠지 같은 실수를 할 것 같아서 아예 이쪽으로 넘어왔다. 블로그는 본캐로, 브런치는 부캐로 활용하려고. 그런데 옴마.. 뭐야 이건. 브런치를 내버려둔지 5년은 된 것 같은데 왜 구독자가 3천을 넘어 있지?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누가 보든말든 중2병 문체로 신세한탄이나 잔뜩 하려고 했는데, 이건 뭔 일이여.
안되겠다. 싹 갈아엎자. 기존 글을 다 지우고, 이름도 바꾸고, 프로필 사진과 작가소개도 바꿨다. 이제 오랜만에 오시는 분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 좋아. 뭔가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짜릿해.
이제 나는 그냥 순수하게 뻘소리나 날리게 될 사람이고, 그런 내가 맘에 안 드시는 분들은 서서히 구독을 취소하실 거다. 그러니 여러분, 마음 편히 저를 버리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원망하지 않을게요. 그럼에도 이 여자가 뭔 뻘소리를 날릴지 궁금하시다면 지켜보셔도 괜찮습니다. 혼자는 좀 외롭기도 하니까요.
어쨌든 나의 사랑스런 부캐, 앞으로 잘 부탁해. 나는 혼자서 잘 해낼 만큼 강하지도 않고, 대중 앞에 솔직히 나설 만큼 용감하지도 않거든. 그런 나를 잘 부탁해. 나도 너를 많이 아껴줄 테니까.
써놓고 보니까 이중인격 같군.
뭐, 괜찮아. 이런 게 중2병 스타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