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웬일인지 내내 기분이 괜찮았다. 드디어 약발이 드는 건가. 설거지도 빨래도 청소도 밀리지 않았고, 꼬빅꼬박 강아지 산책도 나가고, 한두 시간씩 카페에 앉아 조금씩 일도 한다. 물론 오전에 두 시간 일하면 극심한 피로감으로 오후 내내 누워있지만, 하루에 반나절이라도 사람같이 사는 게 어디야. 기특하다, 나란 녀석.
병원에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렸더니, 마스크 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 의사선생님도 눈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무엇 덕분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 같냐고 묻는다. 아마도 일이 줄었기 때문 아닐까. 힘들다 싶으면 그만두고 침대로 도망칠 수 있는 생활. 비록 오래된 컴퓨터처럼 쿨타임이 길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고 더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상태가 완전히 좋아지면 무엇을 하고 싶냔다. 음.. 이 질문은 꽤 치명적이군. 왜냐하면 사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게 바로 그거거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다 낫고 나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무엇 때문에 괴로운 건지 고민하다 보면, 반대로 이전의 나는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땐 지금보다 미래가 암담했고, 돈은 없었고, 가족들 문제도 더 복잡했지만 그래도 힘차게 살았다. 물론 종종 울었고, 가끔은 무너졌지. 그래도 금방금방 잘 일어났거든. 지금은 왜 그게 안 될까. 늙었나, 아님 배가 불렀나.
생각해보면 그땐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다. 일단 먹고살아야 했고, 빚도 갚아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의지가 불타올랐지만, 호~옥시라도 돈을 좀 벌고 생횔에 여유가 생기면 나처럼 흙수저 테크트리를 타고난 젊은애들에게 뭐라도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나도 벌고, 남들도 벌게 해주는 거지. 얼마나 좋아? 비록 이 험악한 세상에서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적어도 꿈이나마 꿨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인 걸까. 그땐 어려서 낭만적인 꿈을 꿨고, 지금은 현실에 찌들어서 꿈을 잊은 걸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 지가 꽤 됐다. 당연히, 즐거울 일 하나 없는 인생인데 왜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그 말을 선생님한테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덧붙여, 우울증 때문에 사는 데 재미를 못 느끼게 된 건지, 사는 데 재미를 못 느껴서 우울증에 걸린 건지 잘 모르겠다는 말도,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즐겁게 살았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초심'이라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리기 위해 노력중이라고도 했다. 잘 하고 계시다는 칭찬을 들었다.
칭찬 들어서 좋긴 하지만 여전히 해결된 건 없다. 이러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불속 폐인으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고. 그럼에도 어쨌든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보려는 것이다. 인류평화같이 거창한 게 아니라도 분명 내 인생 어느 한구석에는 아주 사소하나마 가치있는 것들이 있을 거다. 그걸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