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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질 en axor Nov 11. 2024

나아지고 있어서 두렵다

요즘 내 상태는 엄청 괜찮다. 3년 넘게 먹어온 약을 중단한 지 석달째. 예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약 끊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자기 전 신경안정제는 완전히 끊지 못했지만 그것도 먹는 회수가 많이 줄었다. 무것도 못한 채 누워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대신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람들도 조금씩 만나면서, 다시 사람다운 삶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좋은데, 한편으로는 두렵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일인데 두렵다니 이게 말이 되나?


내일이란 게 없었던 나는 두려울 것도 없었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든, 전쟁이 터지든, 아니면 지구가 멸망하든 별로 상관 없다. 의미없이 숨만 쉬고 있는, 죽는다고 딱히 달라질 게 있나. 덕분에 아무것도 무섭거나 불안할 게 없었다. 그건 우울증이 가져다준 유일한 장점이었지만, 나는 그 장점이 꽤나 맘에 들었다.


그랬던 내가 조금씩 삶에 애착이 생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시 앞날을 계획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게 너무 싫다. 실패할까봐 미리 걱정하는 분. 뭔가를 잃까봐 미리 두려운 기분. 아직 잃지도 않았는데 미리 슬퍼하는 기분. 그게 너무 크게 느껴져서 힘들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걸까. 이게 무슨 중2병스러운 느낌인지 당췌 알 수가 없다.


무기력함이 사라지면 다 좋을 줄 알았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생겨날 줄은 몰랐다. 감정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겠어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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