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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별 Oct 26. 2023

첫 알코올중독 입원치료 그 후

4일의 입원, 퇴원 이틀째.

 새벽에 잠 안 자고 들락거리는 소리가 수상하다 했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틀비틀 벌써 취해있다. 술 마신 것도 화나는데, 또 안 마셨다고 우겨대는 꼴을 보니 이 꼴을 내가 몇 천 번(몇 만 번일 수도)을 넘게 보고서도 또 화가 나는 게 참 나도 대단하다,


 아침에 첫째 등원시키고 하필 오늘 아침 일찍 둘째 소아과에 가야 해서 남편에게 정신과에 같이 가자니 거길 왜 가냔다. 왜긴왜야. 입원을 며칠이지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마셔버린 것에 나도 진짜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뭘 더 이상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둘째 소아과 갔다가 남편은 끝까지 안 가겠다고 해서 나 혼자 둘째 데리고 정신과에 갔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의사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많이 생각했다.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자 낮잠 자던 둘째가 깨어 버렸지만 그래도 과자 먹으며 잘 앉아있어 줘서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오늘의 상황얘기를 먼저 했다. 원장님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고, 남편의 입원환경에 대한 불만을 표한 입장은 결국 퇴원하기 위한 구실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너무 빨리 퇴원해 버렸으니 마시는 게 당연했을 거라고. 내가 물었다. “제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원장님은 아내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단다.(여기서 절망 1) 이 중독은 결국 본인이 깨닫고 본인이 의사와 치료를 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그랬더니 가족들을 다 모아놓고 본인의 중독임을 인정하고, 가족들이 설득하여 입원치료를 받게 하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시댁 식구들에게는 얼추 얘기는 했었다고 하자,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공표를 하게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꼭 그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남편은 자존심이 굉장히 센 사람이라 자신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이런 일에 있어서 정말 독이 되는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상가상이다 솔직히..


 그리고 내가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 ”제가 이 상황에서 제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라고 했더니, 원장님은 ”솔직하게 아내분을 제 딸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면 “포기하세요.”라고 말해줄 겁니다.“(절망 2)라고 하셨다. 아내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내가 온갖 노력을 해본다 한들 나에게는 결국 번아웃이 올 거라고 하셨고(9월의 상황이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환자의 가족인 내가 가장 힘들 거라고 하셨다. 내가 첫째가 눈치가 빨라서 나의 부정적 감정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 부분 또한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절망 3).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포기하세요 “라는 그 말에..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몇 년의 우여곡절 끝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사실을 직접 의사 선생님의 입으로 듣게 되자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정말로 내가 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 사람을 놓아야 할 때인 것 같고, 정말 내가 무얼 한들 소용이 없다는 것이 사실 절망적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집에 오는 길에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대강 상황을 말씀드리고 길게 머무실 것 작정하시고 오셔서 입원설득하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집에 가서 남편을 만나 얘기를 하니 여전히 입원치료에 굉장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치료에 대한 의지는 솔직히 없어 보였다. 저녁즈음에도 결국 술을 (몰래) 왕창 퍼마시고 밥을 들이마시듯 먹고는 약을 먹고 잠들어 버렸다.


 좀 전에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입원치료를 설득하는 노력은 해보겠지만, 나도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지.. 시어머니께서 남편을 계속 케어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라도 친정에 들어가서라도 나와 아이들의 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혼은 생각만 해도 왜 이렇게 고민이 되는지.. 양육비를 조금 받는 다 한들 외벌이로 아이 둘을 키울 계산이 잘 안 된다. 이게 지금 내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다음은 이혼가정에서 자라는 그늘에 대한 걱정이 두 번째.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가 힘들어지는 게 세 번째. 등등


 길었던 오늘일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 기도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성호경이라도 그으며 잠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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