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가복음 1:9)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해서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분이 아니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셨던 분으로 성경은 전합니다.
사람들이 언제 자신을 알아주고 대접받는다고 특권 의식을 느낄까요? 모두가 줄을 설 때 줄을 안 서도 되는 사람이 되었을 때 특권 의식을 느낍니다. 대표적인 곳이 공항입니다. 1등석과 이코노미의 차이뿐만 아니라 일반 승객과 VIP의 동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교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교회에서 유일하게 줄을 안 서도 되는 분(?)이 누굴까요? 바로 담임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똑같이 줄을 서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자 기다리셨습니다. 인지상정으로 봤을 땐 세례를 꼭 받으셔야 했던 것도 아닙니다. 세례를 주셔야 할 분이신데 세례를, 그것도 줄을 서서 받으셨다는 것은 많은 교훈이 담긴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꾸 대접을 받고자 줄을 안 서려고 합니다. 과정을 고스란히 겪지 않고 생략하거나 펄쩍펄쩍 급행으로 뛰어넘는 것을 놓고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셨다' '하나님께서 아무개를 사랑하셔서 선한 길로 이끄셨다' '하나님께서 급하게 몰아가신다'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군대를 전방에 배치받으면 '기도 안 해서' 전방에 간 것이고 '기도를 많이 했더니' 편안한 공익근무요원이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과 똑같이 어머니 태중에서 성장하셨고 유년기를 거쳐 공생애에 이르기까지 못난 서기관들과 답답한 율법교사들의 설교를 들으셨고 이들이 인도하는 엉터리 성경공부에 참석하셨습니다.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호칭이 '소경' '너희의 아비는 마귀' '독사의 자식'이 된 이유가 마음 깊이 전해집니다. 그만큼 가슴을 치는 통탄의 시간이 충분히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유월절(passover)의 은혜라는 것을 잘못 적용해선 안 됩니다. 공부 안 하고 기도 열심히 했다고 공부 많이 한 타 종교인이나 무종교인들을 제치고 시험에 합격시켜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사랑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지독히 사랑하셔서 더 철저히 줄을 서게 하시고 더 에누리 없이 똑바로 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 없는 자녀, 어느 누구로부터도 비난받지 않아도 될 떳떳함과 깨끗함이 하나님과 그 자녀들에게 더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