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황 Mar 12. 2019

눈물 나게 아파봐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몹시 아팠다. 


시합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시점. 무리해서 운동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주만에 체중을 7kg 감량한 상태,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보겠다며 시작한 10km 달리기.

체중감량의 여파인지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시합이라고 생각하며 이겨내려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우격다짐으로 10km를 다 뛴 뒤 뭔가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춥다. 

실컷 달렸으니 온몸에 열이 확확 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땀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시작은 전신 근육통이었다. 운동하고 나서 뻑적지근한 통증과는 다른 온몸이 아린 근육통. 속으로 생각했다. 


 '오바질 하지 말걸.'


체중감량을 시작하고 나서는 적당히 운동하면서 컨디션 관리에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게을리 운동했던 초조함 때문인지 오바질을 하고 말았다. 

 술을 먹을 때, 누군가와 싸울 때 사랑을 고백할 때 누구나 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을 하는 후회. 

  오바질 하지 말걸. 

역시나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근육통 이후 찾아온 것은 위장 통증이었다. 속이 몹시 쓰리고 그동안 밥처럼 먹었던 연어회가 다시 기어 나올 것처럼 속이 미슥 거렸다. 어쩔 수 없이 결근을 통보하고 와이프에게는 몸살약을 부탁한 뒤 이불속에 몸을 파묻었다. 그 와중에 몸무게 생각에 저녁으로 그놈의 연어회를 먹는 걸 보면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모양이다.  


 역시나 다음날 일어나도 몸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항복을 외치고 아침에 죽을 사 먹은 후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감기 몸살에 위장병이 겹쳤네요. 영양제랑 좋은 약으로 해서 수액을 한번 맞으시죠."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링거를 맞고 누웠다. 약은 '저 약이 내일이나 되어나 다 떨어지려나.' 싶을 정도로 느리게 내 혈관 속으로 들어왔다. 

우숩게도 링거를 맞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시합에 대한 아쉬움이나 결근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와이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다이어트한답시고 예민해져서 짜증 부렸던 것도 미안하고 몸이 아파서 걱정시키는 것도 미안했지만 그것보다 그 큰 건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와이프 품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 그것뿐이었다. 

  

  물론 와이프는 곧 퇴근해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약을 맞는 한 시간 내내 어찌나 와이프가 보고 싶던지. 

  난 아직 많이 젊지만 내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마저 들었다.  

 그 어떤 동기도 없는 그냥 순수하게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 

 나이 먹고서 이런 순수한 마음을 품어본 적이 언제 또 있던가? 


 시합은 포기했다. 괜히 오바질 했다가 시합 때 부상이라도 입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결국 아프고 나서 깨닫게 되는 건 내가 진심으로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지고 볶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내가 원했던 것은 

결국 와이프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이놈의 몸살에게 약간의 감사를 전한다. 갑자기 생긴 이놈의 치통도 같이 데려가 주면 더욱 감사하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종합 격투기 시합을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