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우울증 약 먹으며 느낀 점

선물이자 고통이었던 시간들

by 라온제나


“우울증이에요”

의사선생님의 말에 병원이 떠나가라 통곡이 나왔다.

내가 너무 가여워서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나온거 같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한달이 지났을때, 나는 내가 우울증을 다 극복했다고 엄청난 착각을 했다.

그때 쓴 일기를 보면 정말 이불킥이다..


약 1년 동안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나 이제는 진짜 우울증 끝난거 같아!”

라는 말이었다.

초반에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고,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상에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지 아니까 다시 기복이 왔을때, 엄청난 저항감과 화로 인해 더 크게 우울했다.


사실 1년 중 대부분의 날들은 우는 날보다 웃는날이 많았다. 누워있는 날보다 활기차게 걷고 뛰어다니는 날이 더 많았다.

내 우울증은 중증은 아니라 경미한 정도인것 같다. 그래서 일상생활을 할수는 있었다.

다만, 우울증상이 심해지는 날들이면 아무것도 못했다. 정말로 온 공기가 나를 위에서 짓누르는 숨막히는 느낌. 아무리 일어나려고 애써봐도 몸이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 겪어봐도 겪어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느낌.


내 주위에 몇년째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오래 먹지는 말아야지! 나는 1년이면 분명 우울증 완치를 하고 작별하게 될거야! 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니까 일년 내내 나는 우울증과 나를 분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우울도 나의 일부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저항감이 드는 말이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울고 누워만 있게 되는 걸 완전히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다행히 나는 너무나 운좋게도 주변에 귀한 인연들 덕에 내가 나를 못받아들여도 나를 대신 받아주는 그들 덕에 지금까지도 살아있는것 같다.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점이 좀 달라진것 같다

이전에 나는 타인을 쉽게 판단했다. 상황을 쉽게 판단했다.

그런데 이제는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이 상황도 한 부분만 보기엔 너무 좁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 아픈 세상에 한층 더 연민이 간달까.


우울증 약을 일년을 먹고 나니 발견하게 된것 또 하나는 사실 내가 ADHD라는 것이었다.

여행을 자주 가고싶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ADHD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했는데 검사를 하고 나니 ADHD라고 했다. 그리고 우울도 이것때문에 결과로 온것일수도 있다고 했다.

자주 반복되는 좌절을 겪으며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ADHD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1-2주간 내내 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다 이런 세상에 산다는 말이야?’ 였다.

아니, 이렇게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간다고?

긍정적인 생각만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루종일 일해도 더 일할 수 있을것 같다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거의 안들어서 너무 신기했다.

그럴수도 있구나..

일년 내내 나를 괴롭히던 자책과 무기력한 생각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를 향한 무한한 자신감과 열정만이 있었다.

그 시기는 정말 짜릿했다.

그런데 너무 과몰입하는 바람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트리거가 되어 온몸이 아파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약을 다시 끊어야했고 당분간은 처방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만큼의 집중력이 없어서 일상이 괴로운데, 그래도 과하게 아프거나 우울하지는 않아서 다행인듯.


나는 생각이 너무너무 많아서 진짜 생각을 줄여줄 수 있는 뇌 수술이 있다면 받고 싶을 정도다.


5개월간 다니던 정신과를 지인이 추천해준 곳으로 바꾸고 나서 훨씬 더 안정적여졌다.

다른 병원들과 다르게 무조건 상담시간이 20분으로, 예약만 받는다. 초진은 한시간 정도.

선생님은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적당히 딱 좋다.

특히 나의 몸에 맞는, 나에게 맞는 약을 같이 찾아봐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궁금하신 분들은 댓글주세요)


이 외에도 십년전 받았던 심리상담을 일년째 받고 있다.

이 선생님은 줌으로 만나는데 다른 오프라인 상담에 비해 저렴하다. 그런데 나한테 잘 맞는 스타일이고, 선생님은 늘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잘 꿰뚫어보신다. 게다가 엄청 따뜻하다.

덕분에 내가 많이 좋아진게 아닌가 싶다.

(상담도 궁금하시면 댓글주세요)


가장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가족들이다.

언니와 동생, 남편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기처럼 우는 나를 아기처럼 잘 돌봐줬다.

나도 나를 어떻게 돌봐야될지 몰랐는데

그들은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래서 내면아이가 많이 위로받은것 같다.


우울증은 자기가 자기한테 화를 내는거라고 하던데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알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우울해졌다니?

이런 생각에 이해가 안됐었는데

안전해져서, 이제는 과거의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이 나와도 된다고 생각해서 올라오는것 같다.

이제는 좀 봐달라고.

이제는 좀 알아봐달라고.


화를 낼 대상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해가 되버렸다.

나도 이해가 되고 상대도 이해가 되니,

내안의 화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나보다.

제일 쉬운 방법인 ‘니가 문제야’로 간것 같다.

어쨌든 풀리지 않은 감정들이 존재하는데 갈곳을 잃어서 그냥 내 몸으로 분출되버린것 같다.

그게 눈물로, 무기력으로, 우울로 온것같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너무 생각했었는데

나를 사랑하는 건 끝이 없나보다

많은 노력을 해도 또 더 사랑해줘야하나보다.

그동안 너무 돌보지 않았어서 더 잘 돌봐줘야 하나보다. 참 어렵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는건 너무 쉬운데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하는건 너무 어렵다.


나는 언제 완전 단약을 하게 될까?

이제는 빨리 단약하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러다 또 기복이 왔어서

그냥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나의 일부일지도.

우울증으로 인해 나를 더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잘 안되는데 내려놓게 된다.

그래도 살아내야지. 그래도 잘 살아내야지.

감사한것들에 집중하고 지금에 만족해야지.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한번 조금씩 해보자

이미 많이 좋아졌다.

이 끝이 어떻게 될지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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