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하기 나름이겠지
최근 후배들의 청첩장만 받다가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너무 반가워서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잘 지내고 있지? 좋은 소식 들었어. 축하해"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 연락 안 하다가 결혼한다고 연락하기가 좀 그랬는데.."
"어릴 적 친구잖아. 이 참에 다들 얼굴 보고 그러면 좋지 뭐"
"드디어 가네. 결혼하면 좋냐?"
"음.. 장단점이 있어"
결혼을 빨리 한 편이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다. 20대 후반 정도. 결혼 빨리하는 게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있었지만, 부모님을 보면서 가정을 이루는 게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고 장교로 군 생활한 덕분에 밥벌이도 남들보다 빨리 하게 되었다. 실제로 직업군인의 길을 가는 지인들을 보면 2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장기복무를 택하지 않고 사회로 나왔다. 다시 취준생이 되고, 직장과 거주지를 옮겨 다니면서 자연스레 결혼이 미뤄지게 되었다.
만 29세에 결혼을 했다. 내 계획보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결혼을 빨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허니문 베이비를 얻었으니, 아이의 나이로만 따지면 주변 선배까지 포함해서도 빨리 아빠가 된 셈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자주 묻곤 한다. 천 번도 넘게 들었다. "결혼하면 좋냐?"
결혼하면 힘들지만 좋다.
케바케(case by case), 사바사(사람 by 사람)이긴 하다. 결혼하면 힘들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같이 생활하는데 맞추는데 시간과 이해가 필요하다. 게다가 당사자들만의 결혼이 아닌 서로의 가족과 친지들이 결혼이라는 계약으로 인해 묶이게 된다.
출산 전까지는 그리 어려워하는 부부는 없었다. 뭔가 소꿉놀이하는 것 같고, 연애의 연장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많은 것이 달라진다. 뭐가 달라지냐고? 지금까지 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살았다면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구나. 주인공의 부모구나. 아이가 태어나도 스스로가 주인공인 것처럼 살 수도 있다. 그러면 힘들 것이다. 나도 힘들고, 가족들도 힘들 것이다. 그러니 그냥 주인공 부모 하는 게 좋다. 해보지 않으면 뭐가 좋은지 모른다.
결혼하면 내가 많이 도와줄게
결혼 전 대개 착한 남자들은 해맑은 얼굴로 말한다. 결혼하면 육아와 가사 많이 도와주겠노라고. 나도 그랬으니깐.. 아내도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육아와 가사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아내가 해야 되는 일이지만 내가 도와주는 거야. 에헴"이렇게 되어버린다. 특히 맞벌이하는 부부라면 100% 아내는 힘들어서 뒤로 넘어간다. 그리고 부부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냥 공동대표라는 생각을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맞벌이 부부는 직장에서 똑같이 일한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편은 결혼 전처럼 소파에 파묻혀서 편히 쉰다. 그리고 육아와 가사는 아내가 다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가정은 지속되기 어렵다. 물론 나도 처음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아이와 놀아주고,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도 하고, 청소도 한다. 그래도 아내와 나의 육아/가사 비중은 7:3 정도로 아내가 많이 한다. 주말부부니깐 조금씩 비중을 맞춰보려고 노력 중이다.
외벌이 가정과 맞벌이 가정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랬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 구분. 남자는 직장 생활하면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 그때는 그랬다. 그래도 괜찮았다. 남자 혼자 외벌이로 4인 가족이 그럭저럭 먹고살았다. 어릴 적 기억에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같은 반 친구 중에 아버지가 작은 장사를 하시거나, 공장에 나가시거나, 택시운전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집 사고, 자녀들 대학 보내고, 가족들과 생활이 가능했다.
지금은? 주변에 웬만한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다니는 친구들도 외벌이로 가정을 꾸리는 게 빠듯하다. 집사는 것은 애당초 포기한 친구도 많다. 맞벌이를 해야 그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것도 자녀가 태어나고 육아로 인해 육아휴직이나 퇴사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외벌이 가정이 되는 것이다. 외벌이 가정을 보면 남편의 부담감이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아내도 하루 종일 육아와 가사의 끝없는 사이클에 갇힌다.
나도 가끔 연차 쓰고 하루 종일 아이를 볼 때가 있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게 오히려 덜 힘들다고 느낄 정도다. 그러니 외벌이 가정의 아내는 남편만큼 아니 남편보다 더 힘든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아직도 아내가 집에서 먹고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겠지?
그럼 어쩌라는 건데?
외벌이, 맞벌이, 자녀수 정답이 없다. 처한 상황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선택하고 그것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한 가지 공통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결혼하고 시간이 흐르면 부부간에 설레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기가 끝이 난다. 그때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어여삐 여겨야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된다. 확실한 것은 내가 조금 더 하면 나머지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
그러지 말자. 제수씨한테 전화한다
가끔 가족들한테 거짓말하고 술 먹으러 다니고 결혼 전처럼 노는 지인도 봤다. 내가 즐거운 그 시간에 가족들은 힘들어진다. 그러지 말자. 그렇다고 마냥 결혼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단지 처음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익숙해지면 또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자녀가 자라면서 주는 순간순간의 기쁨과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도 결혼 전에는 친구, 여행, 운동, 쇼핑 엄청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서 오는 행복을 가족에게서 얻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가고 가족들이 서로 맞추다 보면 점점 좋아질 것이다.
※ 2020년 들어서 처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써보려고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