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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Jun 09. 2020

한 번쯤은 돌아이가 되어라

평상시에는 착하게 삽니다.

어릴 때부터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끊임없이 들었다. 엄한 아버지와 교사이신 어머니 밑에서 예의나 순종이 미덕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예의 바르고 착하게만 살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무너졌다. 짓궂고 못된 아이들에게 나는 자주 당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지" , "폭력은 나쁜 거야" , "친구를 때리면 안 돼"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그리고 맞아도 때리지 않았다. 놀려도 대응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만만하기 그지없는 그런 존재였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싸움 잘하는 일진 같은 아이들도 아니고, 그냥 짓궂은 동네방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놀림당하는 동네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학교폭력이었다. 웹툰에 나오는 때려도 "헤헤" 하고 웃는 게 내 모습이었다.


착하기만 하면 당한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런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가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괴롭힘 당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올백머리, 가죽장갑, 항상 구겨진 인상을 장착하고 다녔다. 혹시나 걸어오는 싸움이 있으면 피하지 않고 힘껏 싸웠다. 싸움을 잘하지 않았지만 "쟤는 건들면 안 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한 번은 싸움을 잘하는 친구와 싸우게 되었다. 많이 맞았다. 다섯 대 맞고 한대 겨우 때릴 정도였다. 그래도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했다. 쉬는 시간마다 그 친구의 반을 찾아가서 싸움을 걸었다(비겁하지만 뒤에서 먼저 주먹을 날렸다) 얻어터지면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 친구는 언제 뒤에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하굣길에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더 이상 예의 바르고 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만하지도 않았다. 그 뒤로 주먹질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군 시절 돌아이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군대에서 아주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괴롭힘이나 말도 안 되는 억지는 예외다. 반골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옆 중대장이었던 선배가 나와 우리 소대원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이 있었다. 거기에 항의한 적이 있는데, 중대장은 "전시였으면 넌 총살이야"라고 하며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래 끝장을 보자'


같이 멱살을 잡았다.

"한판 붙고 같이 군복 벗읍시다. 내 헌병대에 신고할 테니"

"너 죽고 싶어? 군 생활하기 싫어?"

"같이 죽읍시다. 군 생활 하기 싫습니다."


어차피 단기복무. 잃을 것이 없다. 불리한 건 장기복무자인 그 중대장이다. 후배 장교가 눈이 돌아가자 겁을 먹었는지 대뜸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불합리한 일은 더 이상 시키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돌아이가 편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 때 나보다 15살 이상 많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욕하고 협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길들이기를 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밀리면 나는 또 중학교 때처럼 되겠지.


그래서 같이 멱살잡이하고 욕하고 싸움이 붙었다.

 

"XX, 한판 붙고 둘 다 잘리면 되지. 그런데 나 절대 곱게 안나가. 대표님한테 다 보고하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다 엎어버리고 나갈 거야"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계산된 돌발행동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 전부가 두 손 들었다. 한동안 이번에 들어온 신입사원 '개 미친X'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더 이상 나에게 욕하거나 협박하거나 억지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나에게 아주 살갑고 예의 바른 동료로 남아있다.  


한 번은 돌아이가 되어라

항상 날세운 쌈닭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마냥 착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내가 겪은 90%의 사람들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180도 다르게 했다. 착하고 만만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고, 까칠하고 무서운 사람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했다. 항상 인상 쓰고 말의 대부분이 욕설이 OO팀장. 윗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방글거리고 부드러운 말투를 구사했다. 깜짝 놀랐다.


"같은 인간인가? 쌍둥이 아니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두려운 사람이 되어라"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 심리가 그런 것이다. 착하기만 해서 당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돌아이 같은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한다면 역효과가 난다. 같이 죽자고 덤벼들면 다들 당신을 달리 보게 될 것이다.



※ 평소에는 차분하고 평온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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