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하나 같이 난해하다. 나는 특히 비디오와 퍼포먼스 작업이 난해하고 어렵다. 가만 보면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작업들은 사회적 담론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트페어와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과, 비엔날레나 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난해한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두 가지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 두 가지를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최근 박보나 작가의 책 <태도가 작품이 될 때> 그리고 박보나 작가와의 북 토크 시간,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서동진의 <동시대 이후>를 이해하기 위한 고군분투 등, 최근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동시대에는 두 종류의 미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미술
2. 사회적, 시대적 담론과 메시지가 담긴 미술
1번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술일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2번 사회적 담론이 담긴 미술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2번 미술은 전통적인 미술로 분류하기보다는 매체(미디어)로 분류해야 하고, 관람하기보다는 읽고 해석해야 하는 철학, 역사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미술은 결국 미학적 가능성의 탐구라기보다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동시대의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미디어로 분류하고 그 관점에서 감상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미술가이기보다는 역사가이다. 기억과 담론을 그만의 관점으로 선택하여 취합 및 해석하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미디어가 된 동시대 미술과 역사가로도 볼 수있는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동시대에 미술은 미디어가 되었다.
매체(미디어)는 어떠한 정보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기 위한 도구이다. 과거 인류에겐 말하기라는 매체가 있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부터 미디어 채널 다양성에 획기적 전환이 일어났다. 그 뒤 교통, 통신, 인터넷이라는 이동수단 기술 발달에 힘입어 지금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수많은 미디어 채널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책, 광고, 신문, 방송, 뉴스,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어떠한 정보와 메시지, 생각과 아이디어, 이슈와 담론을 타자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과거의 미술은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인 미디어의 성격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대에 다뤄지는 미술에서는 어떠한 메시지가 담겼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사회적 담론과 메시지가 담긴 동시대 미술은 이제 단순히 감상용이 아닌 작가의 생각을 타인,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인 "미디어"가 되었다. 동시대에 주목받는 미술은 정치적, 환경적, 기술적 이슈 등 여러 가지 담론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담겨있다. 전통적인 미디어 방식이라면 작가는 텍스트로 그러한 주장을 펼쳤을 것이다. 반면 현시대에 작가는 그의 아이디어와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미술이라는 채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이 갖는 이런 미디어의 성격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런 미디어화 된 미술에서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일까? 선택된 담론과 주장,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표현방식, 이 두 가지가 매끄럽게 맞물린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그런 좋은 작품은 기존의 그 어떠한 미디어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지닐 수 있다. 미술은 주장을 전달할 때 텍스트와 다르게 표현방식과 재료에 어떠한 제한도 없기 때문에 2차원 텍스트를 넘어서 창의적이고 독특한 관점과 방법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가는 역사가이다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이라고 했다. 역사는 고정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단순히 과거 사실의 나열도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선택된 기억과 기록이 편집되고 재구성되어 탄생한 아이디어다. 그렇게 현시대에 새롭게 선택된 역사는 과거의 시대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된다. 동시대의 역사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것이 현시대에 조명받을 수도 있다. 절대적이라고 받아들여지던 것이 전복되고 새로움이 등장할 수 도 있다. 이렇게 사회적 메시지와 주장이 담긴 미디어로써의 미술을 작업하는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대의 기억이나 담론을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역사가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 해석은 항상 도덕적 가치판단이 따른다. 미술가 또한 기억을 선택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치판단이 이루어지며 그렇게 탄생한 담론이 작품의 주제이자 작가의 주장이 된다. 미술가는 잘 아카이빙 되고 나열된 사실과 기억들 중에 선택해서 재구성하고 가치판단을 포함하며 해석한다.
과거 미학적 가능성의 탐구였던 미술은 동시대에 와서 역사와 시대, 기억과 기술,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게 되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카이빙과 레퍼런스가 보다 중요해진 명백한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제 동시대 미술은 철학서와 역사서의 맥락으로 읽힌다. 이제 동시대 미술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대 미술은 미디어다. 그리고 그런 담론을 주장하는 동시대 미술가는 역사가이다. 미술가의 관점을 역사가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작품을 미디어 채널의 관점으로 감상하여, 다루는 사회적 담론과 주제의 표현방법에 더 집중하면, 동시대 미술이 가진 표면적인 난해함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더 깊게 와 닿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