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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사람 Mar 03. 2020

기술적 복제시대, 문화예술이 과거로 회귀하는 이유

기술이 사회와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인간의 역사는 도구 발달의 역사와도 같으며, 기술의 발달사를 쫒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 기술과 인간은 수 만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기술은 공학, 과학의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사회, 문화,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류사의 모든 분야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과거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기술로 인해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카메라의 발명은 구상 미술에서 추상 미술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에 서양미술은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세계와 인물, 그리고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르네상스를 전후로 더욱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도구인 원근법이 발명되기도 했다. 이 흐름은 외부 세계를 점점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아마도 얼마나 대상을 사실적으로 똑같이 그릴 수 있는지가 당시 화가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흐름은 19세기 말 사진 기술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린다. 아무리 화가가 외부 세계를 똑같이 그려도 카메라가 그린 사진보다 똑같이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렸다. 작가 내부의 감정이 묘사되기도 했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묘사하기도 했다. 사진 기술은 미술의 무게추를 재현에서 표현으로 옮겼다. 추상미술은 카메라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시대에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문화 예술 분야에 과거 카메라의 역할에 견줄만한 거대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인 인터넷은 결국 무언가(정보)를 1. 대량으로 2. 빠르게 이동(복제)시키게 만든 기술이다.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역할도 했지만 나는 이 기술이 문화 예술 분야에 미치고 있는 악영향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인터넷에 기반한 기술에 의해, 우리가 어떠한 정보를 접하는 환경이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하였다. 첫 번째로 우리는 이제 무한한 정보를 접할 수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무한한 풍요, 그리고 즉각적 시간성이라는 두 가지 변화는 변화는 책 "레트로 마니아"에서 비판한 것처럼, 문화 예술을 새로운 미래가 아닌 익숙하고 안전한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다. 인터넷의 발명으로 정보를 빠르고 많이 복제할 수 있게 된 동시대 문화 예술은 어떠한 위기에 직면했는지도 모른다.


- 무한한 풍요
- 즉각적 시간성


인스타그램에서 앤디 워홀의 해쉬태그를 검색하면 대략 159만 개의 워홀 작품을 접할 수 있다.


1. 무한한 풍요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아마 인간의 원초적이며 생물학적인 특성일 것이다. 소유하는 것이 곧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의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그런 인류는 1만 년 전부터 농경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잉여생산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백 년 전 산업혁명이 발생하면서 인류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유래 없는 풍요를 얻게 되었다. 소유하는 행위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함이 아니다. 어떠한 사회적, 육체적 만족감을 위함이 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들이다. 죽지 않는 것은 금방 관심사에서 멀어진다. 반면 곧 부족해지고, 떨어지고, 사라질 대상 아쉽고 소중다. 미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는 주지 않는 것처럼, 내가 이미 소유한 것, 내 곁에 영원히 남 것은 이전처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버리기 전까지는 어차피 내 것이고 원할 때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새로 질렀을 때 느꼈던 기쁨이 얼마 가지 않아 곧 소멸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 제품은 영원히 내 소유이고 곁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중문화가 처한 상태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인터넷만 있으면 문화 예술을 무한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작품은 이미지화, 소비하기 쉽게 콘텐츠화되었다. 무한하게 복제 가능하고 소비하기 쉬운 형태의 정보가 되었다. 우리는 그런 무한하게 제공되고 영원히 존재하는 넘쳐나는 콘텐츠 속에 살고 있다. 그 영원한 무한함 속의 문화예술작품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보고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우리에게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존재들로 전락해 가고 있다.


2. 즉각적 접근성(시간성)


우리가 인터넷 시대, 정보화 시대에 얻은 새로운 시간 경험 방식은 무언가를 얻는 데 있어서 빠르고, 쉽고, 즉각적이다. 이 시간성은 쉴 새 없이 우리의 주의력을 쉽고 빠르고 즉각적으로 빼앗아 간다. 과거에 정보나 콘텐츠를 접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이동이 수반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손가락으로 버튼만 누르면 바로 접근이 가능하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최근의 정보는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뉴스피드에 자동으로 배달되어 있기도 한다. 정보에 접근하기까지의 시간 간격이 0을 향해 수렴하고 있다.


이 즉각적 접근 가능성은 "지루함"에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지루함은 더 이상 결핍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포화상태, 포만감에 따른 욕구 감퇴에서 비롯된다. 즉각적 시간성은 단위 시간당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즉각적 시간성을 가진 현대 사회에서 언제나 원하면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예술에게 우리는 점점 더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3. 문화예술이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를 작품이 "지금, 여기 에만" 존재할 때 갖는 특성이라고 정의했다. 무한한 풍요와 즉각적 접근성이라는 기술적 복제 시대의 특징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대상을 "언제,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즉 예술작품에 아우라를 소멸시킨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이 전통적인 것에는 향수를, 새로운 것에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한다고 했다. 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작품을 집단적 수용대상으로 만든다. 그러면 개개인의 반응들은 집단적 반응에 의해 묵살된다. 그러면 전통적, 과거의 것은 보수적, 무비판적으로 향수되는 반면 새로운 것은 반감을 얻어 비판되기 쉽다. 새로운 것이 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기술은 무한한 풍요와 즉각적 시간성에 의해서,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한다. 결국 이것은 문화 예술을 새로운 미래가 아닌 익숙하고 안전한 과거로 회귀하게 만들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양준일 그리고 을지로와 레트로 갬성까지, 최첨단 기술이 넘치는 미래 같은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과거에 열광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지 국내, 일부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 현상은 <레트로 마니아>에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음악, 패션, 미술 등 전방위적인 것임을 소개한다. 나는 그것에 인터넷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기술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은 과거의 기록과 기억을 DB로 제공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기억을 쉽게 열람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즉각적이고 쉽고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소비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과거의 낡은 것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며 진보해왔다. 사진 기술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분명 미술을 진보하게 만들었다. 과연 인터넷과 그에서 파생된 기술들(소셜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스마트폰 등)이 동시대에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그 기술들은 우리로 하여금 문화 예술을 쉽고 빠르게 접근 가능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화 예술을 더욱 익숙하고 안전한 과거로 회귀하도록 부축이도록 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술과 도구의 발달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도구를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도구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References:

레트로 마니아, 사이먼 레이놀즈, 작업실유령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도서출판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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