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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11. 2022

자연스러운 우리말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 물어 오신다면.

     훌륭한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 고군분투 중이다. 어떤 일은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좋아진다. 그러나 번역은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매 순간 발전하고, 각 단어가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와 허용되는 범위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번역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무엇일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 씻지 않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뉴스를 보고 온라인으로라도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번역이 단지 돈벌이 수단이었던 시절, 나는 빠른 직역을 선호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까지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영 번역이란 우리말을 영어로 변환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유가 생겨 번역 수업에 참석했다. 


     첫날, 강사분은 ‘그녀’라는 단어에 관해 열변을 토하셨다. ‘그’는 남자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이기에, 대상이 되는 사람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녀’라는 단어는 일본어 표현을 직역한 것으로 우리 땅에 남아있는 일본의 흔적이라며 사용하지 말자고 하셨다. 그 말과 태도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나는 ‘그녀’라는 단어를 병적으로 피했다. 그래도 차마 여성을 ‘그’라고 번역하여 혼란을 줄 수는 없어서, 지금까지도 대명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문학 번역을 시작하며 소설 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작가도 되고 싶었지만, 번역을 위해 작가의 마음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문우 중 한 분이 퀴어 소설을 써오셨는데, 등장인물을 모두 ‘그’라고 지칭하셨다. 작가는 이 점을 지적하셨다. ‘그녀’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그 의지를 작품 내내 너무 강력하게 자주 피력하시는 것 같아서 읽는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평이었다. 작가는 작품 전체를 사용하여 자신이 믿는 정치적 올바름을 피력해야지,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그저 꼰대의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하셨다. 


     며칠 뒤에는 김영하 작가의 신작을 읽는 모임에 갔다. 김영하 작가 특유의 문체를 좋아한다고 밝히신 분은, 마치 원서가 영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같은 이유로,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일부러 번역투를 사용하여 글을 쓰기도 한다고 모임 인도자는 덧붙였다. 또 다른 충격이었다. 어투부터 문장 구조, 단어 단어를 고를 때 작가가 얼마나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지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통해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한자어, 외래어, 번역투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더욱 널리 사용하자고 외치시는 분이다. 우리말의 특징은 처음 듣는 단어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어쩌면 한국에서 위대한 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학술 단어를 우리말로 재해석하여 만들지 않고 영어나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얼마 전 ‘심심한 사과’ 사건이 터졌다. ‘심심(甚深)하다’는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의 한자어인데, 한자어를 모르는 요즘 젊은 세대가 이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우리말 의미로만 받아들여 논란이 된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유시민 작가는 이에 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젊은 세대가 한자어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오히려, 발음도 불편하고 직관적으로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한자어를 오남용 하는 게 문제라고.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다. 가장 미국다운 문체를 가진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요, 미국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을 써낸 사람이다. 그렇다면 번역가는 가장 미국스러운 우리말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아니면 가장 우리말스러운 문체로 미국을 그려내야 하는가.


     <<The Celebrated Jumping Frog of Calaveras County>>라는 작품에서는 미국 동부와 서부의 차이점을 그리기 위해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화자는 전형적인 동부의 학술적 화법을 사용하고, 두 번째 화자는 전형적인 서부의 사투리를 구사한다. 첫 번째 화자가 두 번째 화자의 말을 다 알아 들었는가 하면, 아니라고 본다는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번역가는, 표준어 사용자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사투리를 살려야 하는가?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매력은 생동감 읽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장난스러운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미국 중부지방의 일상을 생경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톰 소여의 말투에 지난 세기 더빙 영화의 성우 목소리가 덧입혀 떠오른다면, 이건 과연 잘 된 번역이 맞는가.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삼는 번역가라서 그런지, 정답을 찾으려 할 때면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 진다. 적어도 번역해야 하는 문장에 관해서는 참고할 원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가의 지향점은 다르다.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다. 번역가 스스로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무엇일지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고전문학을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겨오기 위해서, 19세기 영미문학 감성이 물씬 돋아나는 번역투를 사용할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속담까지 지워내고 우리에게 단숨에 와닿는 속담으로 바꿔낼지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은 번역가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최대한 많이 배우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서로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혼자만의 기준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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