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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Dec 11. 2023

독서하면 경청할 수 있게 된다.

책으로 사는 삶

책으로 사는 삶 #2

독서는 경청의 연습이다. 


       경청은 어렵다. 열렬히 듣는 것도 어려운데, 끝까지 듣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를 듣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과 겹치는 단어를 찾아 헤맨다. 내가 속상해서 빵을 샀어, 라는 말에, 나 지난주에 진짜 맛있는 빵집 찾았어! 라고 답하며 나의 이야기를 주야장천 늘어놓는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장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어만 포착하는 것은 현대인의 고질병이 되었다. 그러니 반어법으로 농담을 건네도 진담으로 믿고 죽기 살기로 반박하며 싸운다. 말로 하면 사라질 싸움인데, 댓글로 남겨두면 두고두고 흑역사가 되기도 한다. 

       귀가 막힌 것도 아니고 이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마음이 불안해서 그렇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누군가가 말하면, 시선과 함께 인생의 스포트라이트까지 그에게 빼앗기는 것 같다. 제 존재를 말로 증명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불안감이 막연하게 울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하고 자랑하고 자신을 부풀린다. 말로 표현하고 자랑하고 부풀리는 동은, 마음속에 피어나는 불안감을 지워낼 수 있으니까. 


       독서는 경청의 연습이다. 문학은 특히 더 그렇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짧게는 순간, 길게는 일생이 펼쳐진다. 다 읽을 때까지 독자는 자신의 목소리는 잠시 넣어둔 채로 고요 속에서 책 속 인물의 삶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각 사건에서 제 의견이야 어떠하든 상관없이, 화자의 선택을 그저 따라갈 뿐이다. 자신만의 속도로. 화자의 목소리를 그저 들을 뿐이다. 그러니까 독서는 가장 능동적 형태의 경청이다. 

       나는 책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는 책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순간 내 삶의 주인공이 바뀌지는 않는다. 나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에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서 도피처가 필요할 때 찾기까지 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연습을 했다. 처음엔 어려웠다. 조금만 읽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글을 쓰게 되기도 하고 책을 덮고 혼잣말하기도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책을 덮고 다른 무언가로 신경을 돌리기도 했다. 마치 말을 끊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법 두꺼운 책까지 무난히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300~400쪽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후루룩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이 많이 안정된 탓이다. 책은 독자가 아무 말 없이 그저 읽는다고 해서 그 의도를 곡해하지 않는다. 작품을 읽다가 어디에 멈춰도, 여기저기에 뭐라고 댓글을 달아도, 독자를 판단하지도 않고 독자에 맞춰서 제 이야기를 뒤틀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제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끝이 날 때까지. 나는 변함없이 단단한 그 모습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생각을 하나하나 펼쳐본 뒤, 정리하고 다시 독서로 돌아간다. 그렇게 경청을 연습한다. 


       요즘은 대화하는 상대의 옷차림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시선을 상대의 눈에 집중하고 머릿속으로 상대가 하는 말을 능동적으로 그리며 경청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들으며 설명이 부족할 땐 즉각적으로 부드럽게 요청할 수 있다. 책과 비슷한 모습을 가장하고 단단하게 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사실, 사람이 생각하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다. 서로에게 크게 실망할 일도 없고, 서로 비방할 것도 없다.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다면 그 안에 자리잡은 순결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본질을 교묘하게 피해서 상대의 티만 찾아내 비난하는 행위를 그칠 수 있을 것이다. 독서가 이렇게 세상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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