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사는 삶
책으로 사는 삶 #3
독서는 공감의 시작이다.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 있어도 눈을 감고 가만히 집중하면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머릿속 볼륨을 키우고 생각에 집중하면, 아무리 웃긴 영화가 재생되고 있어도 어떤 내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본질은 이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구나. 의지를 발휘하면 언제든 우리는 세상을 끊어낼 수 있구나.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면, 우리는 각자 홀로 고립되어 존재한다.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고, 마찬가지로 세상에 연결된 타인을 여러 통로를 거쳐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물리적 특성을 전제로 할 때,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세계를 두 개나 건너뛰어야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단 한 번도 다른 세계로 건너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그저 불가능하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경험을 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소설을 읽을 때이다. 몰입해서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의 연결을 뽑아내고 소설 속 세상에 연결한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서사를 따라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머릿속은 잠시 꺼 두고 주인공의 목소리를 마치 내 생각인 양 읽는다. 주인공은 저만의 선택을 하고 그에 의한 삶의 굴곡을 경험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의견도 보탤 수 없이 그저 그의 선택과 굴곡을 따라간다.
현실에서 종종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판단하고 충고한다.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므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음에 공감한다면, 쉽사리 판단하고 충고할 수가 없다.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러한 연습을 하게 된다. 이런저런 판단과 충고를 내리며 주인공의 삶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상상을 해보지만, 지면에 적힌 검은 글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다 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공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일단 이해해야 공감할 수 있다. 이해는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다. 지금 이 순간의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자체를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어떤 삶을 거쳐 그 사람이 만들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이 알아내는 모든 과정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그려내야 하는 것이기에, 집중력과 기억력, 창의력과 생각의 유연성까지도 필요하다. 생각보다 여러 기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존재감을 더욱 강렬하게 내뿜고자 열망한다. 그래서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유일한 것은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며, 존재를 인지할 타자가 많을수록 존재감이 두터워지니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공감능력은, 소설을 읽으며 연습할 수 있다.